정부 ‘수직 통합’ 산업구조로
울산·여수·대산 등 석유단지
중국·중동 등 저가공세 맞서
나프타 원가 경쟁력 제고 유도

여천NCC 부도 위기로 드러난 국내 석유화학업계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정유·석유화학업체 간 설비 통합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유사와 연계돼 있지 않은 석유화학설비를 정유사와 통합해 산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다.
13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정유·석유화학사간 ‘수직 통합’을 골자로 한 사업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의 후속대책으로, 이르면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 ‘정유·석유화학 일체화’라 불리는 이 후속대책은 울산·여수·대산 석유단지에서 정유사와 연계되지 않은 석유화학기업과 정유사의 설비 통합 지원이 핵심이다. 정유사의 원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저렴하게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해 석유화학제품 원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에서 추진 중인 나프타분해설비(NCC) 통합을 모범사례로 보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는 롯데케미칼 대산 공장을 양사 합작사인 현대케미칼로 넘기고 이에 상응하는 자산 가치를 HD현대오일뱅크가 추가 출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작사를 세워 설비를 합치고 점진적으로 생산량을 줄이는 방식이다.
석유화학업계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연말에 나왔던 정부 정책이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위한 지원 방안이었다면 후속대책은 사업 재편에 초점을 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유·석유화학사 통합으로) 사업 재편을 하면 세제·금융·공정거래 지원 등을 어떻게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후속대책은 국제시장 상황을 볼 때 NCC 기업 등 석유화학사가 앞으로 단독 생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NCC는 원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이나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시설을 의미하는데, 최근 중국발 공급과잉 등으로 에틸렌 등 가격이 떨어지면서 업계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3위 에틸렌 생산업체 여천NCC는 한때 조 단위 영업이익을 올렸으나 최근 채무불이행 위기에 몰렸으며, LG화학은 최근 수익성이 악화한 경북 김천공장 전체와 전남 나주공장 일부 설비를 철거하기로 했다.
전망도 밝지 않다. 에쓰오일 ‘샤힌프로젝트’처럼 정유·석화 통합 공정(COTC, 나프타 추출 단계를 생략하고 원유에서 직접 화학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중동·중국에서 증설되면서 국내 NCC 기업들의 경쟁력은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COTC설비가 더 많아지면 국내 기업 (가격) 경쟁력이 수요선을 이탈하게 된다”며 “이렇게 되면 일본이나 서유럽처럼 설비를 끄게 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겨우 시장가격을 유지 중인 국내 기업의 공급가격이 향후 시장가격 하락으로 더 불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업체간 설비 통합을) 기업들에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라면서도 “업황이 워낙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유와 석유화학이 버티컬 인테그레이션(수직 통합)하는 방식으로 사업 재편이 일어나면 원가절감이 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