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독점은 부정적인 뜻으로 읽힌다. 경쟁 없는 시장에서 지배력을 행사해 가격을 마음껏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의 대안이 없는 소비자는 독점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싫어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그러나 독점을 꼭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독점을 누리는 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한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개발(R&D)에 투자해 혁신을 이뤄낸다. 엔비디아 같은 거대 기술 기업이 계속해서 세상에 없는 기술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다.
70년간 독점 혜택을 누린 한국거래소에서는 이 같은 혁신을 찾아볼 수 없다. 거래소의 거래 시간은 1956년(오전 9시 30분~11시 30분, 오후 1시 30분~3시 30분)부터 2025년까지 총 69년간 단 2시간 30분 증가하는 데 그쳤다. 24시간 거래를 추진하는 나스닥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글로벌 거래소가 지수 사업에 사활을 걸 때 거래소는 지난해 가까스로 지수 사업 전담 부서를 미래사업본부로 격상시켰다.
비단 거래소의 문제만은 아니다. 민간기업과 달리 임직원들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5년 공공기관 지정이 해제됐지만 여전히 거래소는 준정부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금융 당국의 외풍도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혁신하지 못하는 기업에는 경쟁이 필요하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 경쟁은 3월부터 시작됐다. 대체거래소(ATS)는 시장점유율을 빠른 속도로 높여가고 있다. 투자자들은 프리마켓(오전 8시~8시 50분)에 열광하며 50분에 불과한 시간 동안 약 3조 원을 거래하고 있다.
70년간 혁신이 부재했던 거래소도 변화의 첫발을 뗐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거래 시간 확대는 반가운 소식이다. 가상자산, 글로벌 거래소 등 자본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나스닥은 한국을 찾아 서학개미(미국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일즈에 나서기도 했다. ATS와 경쟁을 계기로 한국거래소도 역량을 끌어올려 ‘코스피 5000’ 시대의 주역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