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하직원 관리하고 위에 보고까지 하느라 야근할 바엔, 지금처럼 혼자 일 잘하는 게 나아요.”
신입답지 않은 업무 능력과 주변을 두루 아우르는 성격 덕분에 차기 팀장감으로 선배들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7년 차 강 대리. 인사철이 다가오면서 팀장이 강 대리에게 축하의 마음을 담아 차기 팀장 제안을 건넸을 때 돌아온 대답이다.
상사와 팀원 틈에서 ‘독박’ 호소
승진거부권 요구하는 노조도
리더십 자체 거부는 아닌 만큼
기존 중간관리 역할 변화 줘야

최근 관리직 승진을 피하려는 Z세대 직장인들의 움직임이 강해지면서 ‘의식적 언보싱(Conscious Unbossing)’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워라밸을 외치며 승진을 후순위로 밀어낸 정도였다면 Z세대는 더 적극적으로 리더십을 거부하는 모습이다. 올해 국내 한 대기업 노조가 임금·단체협상에 승진거부권을 넣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영국의 컨설팅 회사에 따르면 Z세대의 절반 이상은 관리직으로 승진하기를 거부한다고 응답했으며, 70% 이상은 개인의 전문성 개발을 통해 경력을 발전시키기를 원하며 관리자 역할을 맡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승진은 선배 세대에게 가장 큰 보상 중 하나였으며, ‘중간관리’를 조직에서 부여하는 중요한 과제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조직 구성원으로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하는 Z세대가 중간관리자 되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바라보는 중간관리자는 팀원 관리, 성과 압박, 그리고 윗선 보고 등의 삼중 압박에 시달리면서 야근을 요구받지만 보상은 약간의 보직수당과 직함에 그친다. 자기계발의 여유는 고사하고 이어지는 회의와 갈등 조정에 여념이 없는 팀장을 보면서 구성원들은 리더의 길을 피하고 싶어진다.
중간관리자는 지금까지 조직의 허리 역할을 해왔다. 최고경영진의 전략, 의사결정이 내려오면 자신의 팀에 맞는 과제와 역할을 해석해서 팀원들에게 전달하고 팀 성과를 책임졌다. 팀원의 역할을 조정하고 갈등을 해소하면서 상사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내려고 노력했다. 조직의 리더와 실무진 사이에서 소통하고 조정하면서 균형을 잡는 조직 운영의 접착제 역할을 해왔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연구에 따르면 지금도 조직의 경영진 89%는 중간관리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조직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Z세대의 중간관리자 거부현상은 위기이자 기회라고 진단한다. Z세대가 거부하는 것은 리더십 그 자체가 아니라 전통적인 조직 체계의 중간관리자 역할이라는 해석이다. 여전히 개인의 성장 열망을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전문성에 기반해 경력을 심화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조직의 성과를 정렬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리더는 구성원들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면서 조직 체계와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간관리자 역할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미리 교육하고 준비한다. 아무리 환경이 바뀌어도 중간관리의 역할은 없어질 수 없다. 조직의 비전이 실무선으로 전달되고, 실무의 성과가 조직으로 연결되도록 조율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멘토링 등 필요한 역량을 육성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첫 관리자로의 승진이 잘 준비되고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그다음은 순조로울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중간관리의 역할과 범주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반복적이고 관료적인 업무는 AI를 활용해 줄이고 더 의미 있는 업무 비중을 늘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글로벌 제약업체 노바티스는 조직 내 위계 구조를 줄이고 자율성과 협업을 강조하는 ‘상사 없는 리더십 경험(Unbossed Leadership Experience)’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조직문화를 크게 바꾸고 있다. 중간관리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이 성장하고 전문성을 키워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면 Z세대가 거부할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경력 개발의 경로를 다양하게 제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관리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면서 조직의 성과에 기여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자. 개인의 전문성을 심화하면서 조직에 기여하는 전문가 트랙도 좋은 예가 되겠다. 선배 세대 입장에서는 ‘조직에서 대인관계 스트레스 없이 일한다는 게 말이 되냐’ 싶겠지만 전문성으로 조직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 인재를 포용하는 것이 득이다.
오랫동안 조직을 든든하게 받쳐온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재정립할 때가 왔다. 신세대 구성원들이 조직에 보내는 뚜렷한 알람에 리더들이 귀 기울이길 당부드린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대 교수·대외협력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