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결함에게

2025-08-14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잠들기 전, 혹은 매 순간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실은, 아주 많습니다. 나에 대한 부정적 믿음은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보입니다. ‘나는 사랑받지 못할 사람’ ‘나는 실패한 사람’ 그리고 ‘나는 결함이 있는 사람’. 오늘 이야기는 이 중 마지막, ‘나의 결함’ 믿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함께 사는 짠한 나의 일부

지나친 자기 비하는 도움 안 돼

결함 알아차리고 말 걸어줘야

내게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 있어. 다른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르고, 열등하고, 약하고, 악하고, 무능해. 돌이킬 수 없는 결함이 있어 나를 고칠 수 없어. 나는 애초에 틀렸고, 망가졌고, 실수야. 결함의 근거를 물으면 답은 개인마다 다양합니다. 외모일 수도 있고, 소위 집안 배경이나 학벌, 경제적 상황일 수도 있고, 학대나 집단 따돌림의 외상적 경험, 혹은 질환이나 장애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결함에 대한 믿음은 그 뿌리가 깊어 나의 모든 말과 행동, 감정에 깊고도 폭넓은 영향을 오래도록 미칩니다. 믿음에 대처하는 첫 번째 유형은, 결함 있는 역할에 익숙해져서는 언어적·물리적으로 폭력적인 학대자를 주위에 두는 경우입니다. 나를 비난하는 사람을 떠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열등감과 죄책감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자신이 자신을 학대하고 평가절하하여 자기 발판을 낮춥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이 가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비슷한 결함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잘만 가는 그런 자리 그 이상으로요.

자기 결함이 드러나는 상황 자체를 필사적으로 피하는 경우가 두 번째 대처 유형입니다. 다른 이에게 나의 결함이 발각되고 알려질 모든 상황에서 물러납니다. 불현듯 치미는 수치심마저 수치스러워, 감정 자체를 없애려 술로, 약으로, 게임으로, 도피합니다. 이 역시 응당 갔어야 할 지점에 이르지 못합니다.

맞서 싸우는 것이 세 번째 대처 유형입니다. 건강한 방향은 아닙니다. 열등감과 불충분감을 극도로 방어하려다 보니 완벽주의·성과주의·물질주의의 현신이 됩니다. 타인의 결점을 금세 찾아내어 분개하고 비난합니다. 실제로 성취에 몰두하다 성공하게 되면 성격이 좀 나아지지 않겠나 싶겠지만 쉽지 않습니다. ‘나의 결함과 무능함이 언젠가 들통날 것’이라 두려워하는 사기꾼 증후군(Imposter syndrome)이 마음을 짓누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실체’가 드러날까 싶어 늘 전전긍긍하고 날을 세웁니다. 아무리 높은 성취도 그 열등감의 구덩이를 메울 수는 없습니다.

이런저런 대처들을 하고는 있지만 내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는 질문을 쉽게 떨쳐낼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러니까 넌 안되는 거야’ 따위의 말을 들어가며 학대받고 방치된 그 시간을 머릿속에서 몇번이고 재생하고 있자면 그 끝에 ‘아, 내게 고칠 수 없는 결함이 있나 보다’와 ‘그냥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의 막다른 골목에 이릅니다. 답이 정해진, 하나 마나 한 질문입니다. 아무 효용도, 기능도 없는 질문입니다. 이제 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결함에 대한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휘두르고 있는 한, 어떤 일이 일어날까’.

결함이 있을 겁니다. 결함이 있는 게 맞습니다.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더 큰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요? 그래서요? 저는 저의 결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때 이런 결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성숙하게 투쟁하면서, 제가 저 스스로와 사랑하는 이들을 괴롭히던 시기는 그야말로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저는 이제 이 결함이 그냥 제 안에서 자기 인생을 살게 둡니다. 여전히 제 결함들은 그들의 자리에 있지만, 그것이 더이상 누군가를 해치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강점과 자원들과 이야기들로 제 다른 측면들을 재미있게 꾸며두었습니다. 그런 빛나는 측면들로, 제 결함과 부족함은 다른 사람 눈에 띄지도 않을 겁니다. (뭐, 결함이 보인대도 상관없습니다. 누구나 껴안고 있을 결함들, 저도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요, 그게 왜요? 그래서요?) 제 결함은 때때로 제가 알아보아 줍니다. 나의 결함도 짠한 나의 일부입니다. 알아보아 주세요. 그 친구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의 경우 제 결함의 쓸모를 찾아 주기도 합니다. 내담자들을 위해 제 결함의 역사를 기꺼이 꺼내어 읽어드리며 심리치료의 재료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결함을 계속 아프게 두지도 말고, 안 보려고도 말고, 극복하려고도 말고, 그냥 있으라 하세요. 알아차려 주세요. 이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오늘은 숙제가 있습니다. 나의 결함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를 써 내려 가는 것입니다. 시작은 이렇습니다. “친애하는 나의 결함 ○○에게.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쓸쓸하게 두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 그리고 그 끝은 이렇게 맺기로 합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 안에서 편히 있으세요. 그 정도 마음의 자리는 저도 이제 마련할 수 있습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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