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림 속의 자연’ 전시(7월 6일까지)는 작가의 이름조차 잘 몰랐던 관람객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합니다. 평생 자연과 추상미술을 탐구해 온 원로 서양화가 석난희(86)의 전시인데요, 지금이라도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작품을 만났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눈 밝은 몇몇 미술 비평가들은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국내엔 그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1992년 석주미술상, 2005년 이중섭 미술상 등을 받았는데도 말이지요. 그는 홍익대 미대 3학년이던 1962년 홍대에서 최우수 학생으로 선발돼 대학생 신분으로 서울 신문회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졸업 후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귀국 후 붓을 놓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1969년 귀국 이후 꾸준하게 ‘자연’을 주제 삼아 작업해 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1962년 첫 개인전 출품작 ‘누드’부터 2000년대까지 작품을 아우르며 1939년생 화가의 60년 화업을 조명합니다. 특히 그가 대학생 때 그린 ‘누드’(국립현대미술관 소장)는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며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미술비평가 오광수가 “단순한 인물 묘사가 아닌 생명체가 지니고 있는 기운”을 담고 있다고 평한 작품입니다. 이후 석난희는 앵포르멜(비정형 추상) 양식으로 구체적 이미지 대신 점·선·면을 통해 감성을 표현해 왔는데, 지금 보니 ‘누드’는 이후 그가 60년 동안 탐구해 온 자연이라는 일관된 주제의 예고편이었습니다.
자연은 그의 작업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1960년대부터 거의 모든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그는 자연의 실체를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매일 산책하며 작업을 병행해 왔다고 합니다. 번지고 스미듯이 화면에 배치한 갈색과 푸른색, 자유롭고 격정적인 붓질과 선은 어두운 감정 표현이 아니라 생동하는 자연의 기운을 연상시킵니다. 그가 보고 느끼고 표현한 자연의 모습입니다. 특히 청색은 석난희 회화의 주조색으로 꼽히는데요, 미술비평가 박윤조는 『그들도 있었다 1: 한국 근현대 미술을 만든 여성들』, (윤난지 외 지음, 나무연필)에서 “석난희의 푸른색은 자연의 ‘생동’과 ‘생성’의 의미”라고 분석했습니다.
석난희는 미술계 유행과 거리가 먼 비주류 화가였습니다. 그가 프랑스에서 귀국했을 무렵 앵포르멜은 유행이 지나고 기하학적 추상이나 모노크롬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자기만의 앵포르멜적인 작업으로 독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선 작가와 김환기 화백과의 인연도 엿볼 수 있습니다. 작가는 홍익대 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김 화백이 아꼈던 제자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전시는 김 화백이 1962년 석난희의 개인전 방명록에 수묵으로 그려 남긴 ‘난희 얼굴’도 함께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