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능금지곡’은 중독성이 강하고 귓가에 맴도는 노래를 일컫는 말이다. 샤이니의 링딩동(2009)이 원조인 수능금지곡은 간단하고 반복되는 대사, 따라 부르기 쉬운 음이 특징이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11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갑작스럽게 새로운 수능금지곡이 탄생했다. 댄서이자 유튜버로 활동 중인 카니의 ‘매끈매끈’ 송이다. “매끈매끈하다, 매끈매끈해. 평평하다, 평평해. 울퉁불퉁하다, 울퉁불퉁해.” 노래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한국어를 공부하던 카니가 단어를 외우려고 즉흥적으로 흥얼거리다 안무를 붙인 ‘무언가’다. 그럼에도 묘하게 빠져드는 맛에 화제가 되나 싶은 순간, 카니가 곧장 샤이니와 키와 함께 ‘매끈매끈’ 송에 맞춘 챌린지를 가져왔다.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춤과 노래는 챌린지를 유도하고, 음만 유지하면 마음에 드는 의태어나 의성어를 아무거나 갖다 붙여도 된다. 춤으로도, 일상적 용례로도 흥할 수 있는 밈은 카니의 스타성이 견인했다. 인종적 상상력이 (납작하여) 매끈매끈한 한국 미디어에, “잤니? 잤어? 잤냐고!”라는 강렬한 일갈로 훅 들어온 카니는 지금 듬뿍 사랑 받으며 신나게 “흔들어 제끼는” 중이다.
세네갈계 프랑스인 댄서이자 안무가인 카니는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한 후 그 인연으로 한국에 왔다. 2024년 1월, <나혼자 산다>(MBC)에 샤이니 키의 친구이자 동료로 출연하며 잠시도 쉬지 않는 흥과 한국 막장 드라마에 푹 빠진 모습으로 단번에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겉보기에는 ‘매우 외국인’인 카니가 <펜트 하우스>나 <내 남자의 여자> 같은 드라마에 열광하며 대사를 정확한 발음으로 따라 하는 장면은 그 낙차 때문에 속절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카니는 키와 함께 김치만두와 깍두기를 만들며 티키타카를 주고 받고, 어이없는 농담을 던지고, 한국의 음식이나 문화에 호감을 드러낸다. 고전이었던 치정물의 대사 “잤니? 잤어? 잤냐고!”는 카니의 폭발적인 리액션과 성량 덕분에 다시 한번 유행어로 등극했다. 이후에도 카니는 “~했니? ~했어? ~했냐고!”의 구조를 활용하고, 불륜 관계의 인물을 “잤잤보이”, “잤잤걸” 등으로 칭하며, 자극적인 소재에 곧장 반응하는 등 ‘도파민 세계관’을 충실히 이어간다.
확실하게 화제성을 확보한 카니는 이후 방송 출연을 이어가다, 2025년 5월 MBC의 유튜브 채널 ‘광 시리즈’가 만든 <카니를 찾아서>로 단독 예능을 시작한다. 최근에는 카니의 한국어 공부가 중심 소재다. 한편 카니는 2025년 7월부터 진행된 Mnet의 서바이벌 <보이즈 Ⅱ 플래닛>에서 댄스 마스터로 출연하여 ‘본업’의 기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카니가 마이클 잭슨, 비욘세와 협업했던 실력자이자 한국어 포함 7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 천재’라는 점 또한 꾸준히 강조된다. 화려한 커리어는 카니의 엉뚱함에 의외성이라는 매력을 더한다. 카니는 이처럼 한국 미디어에서 매우 드물었던, 거의 없다고 봐야 할 ‘흑인 여성’이라는 존재를 특유의 기세로 각인시키는 중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외국인이라는 타자가 대중에게 수용되는 문법과 새로운 감수성을 확장한다는 의의, 인정을 전제로 한 공존의 위험을 내포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러브인 아시아>(KBS1, 2005~2015), <미녀들의 수다>(KBS2, 2006~2010), <비정상회담>(JTBC, 2014~2017), <어서와~한국은 처음이지?>(MBC every1, 2017~)처럼 외국인 출연자를 본격적으로 내세운 방송이 제작되었다. 이런 방송들이 백인중심주의와 문화 위계를 재생산하며, 이들의 발화나 행위는 어디까지나 한국인이 허용하는 범위에 제한된다는 점 또한 꾸준히 지적되었다. 즉 미디어의 외국인은 자신의 정체성과 관점을 고유하게 드러내기보다 ‘유사 한국인(para korean)’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이 유사 한국인은 “한국 시청자가 원하는 정보와 지식을 외국인의 시선이라는 객관적 장치로 포장하여, 미디어가 원하는 대로 이야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안진, 2015, 108~109쪽). 이들의 공통점은 “선진국 출신의 백인이자 귀화 한국인으로서, 한국인과 결혼한 경험이 있고, 한국어에 능통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적극적으로 방송을 통해 표현”(109쪽)하는 것이다. 외국인 출연자는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예찬과 동화를 드러낼 때 수용 받는다. <대한외국인>(MBC every1, 2018~2022)은 외국인 패널을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대한외국인”이라고 호명하듯이. 전통적으로 이런 유사 한국인은 백인일 때, 그들의 외모가 상징하는 선진국의 인정을 동반하기에 소위 국뽕, 애국적 나르시시즘을 충족시켰다. <비긴 어게인>(JTBC)이나 <윤식당>(tvN) 같은 프로그램이 백인 행인만을 카메라에 비추다 비판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징글징글하다, 징글징글해.
반면 미디어가 흑인을 조명하는 경우는 거의 전무했다. 인순이, 윤미래, 이미셸 등의 흑인 혼혈 연예인이 겪는 고충이나 정체성 혼란이 부각된 정도다. ‘아프리카’를 뭉뚱그린 표상으로서 흑인에 대한 빈곤, 미개함, 동물성, 과도한 섹슈얼리티, 폭력성과 같은 고정관념이 오랫동안 공고했다. 샘 오취리는 이런 백인 중심의 인종 위계 사이를 뚫고 피어난, 최초의 방송인이었다. 우수한 배경과 준수한 외모를 갖춘 오취리가 흑인에 대한 편견과 거리감을 상쇄한 방식 또한 유사 한국인으로서의 친밀성이다. 오취리는 한국을 ‘우리나라’ ‘우리 땅’이라고 말했을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인물이다. 오취리의 이런 이미지는 한국 예능에서 흑인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대중의 호응을 얻는 동시에, 한국인-외국인 사이의 위계를 만들어내거나 (다른 인종의 외국인이 담론을 생산하는 데 비해) 리액션의 위치에 그치는 등의 한계도 동반한 것이라고 평가받는다(박소정 외 3인, 2021 참고).
‘무늬만 아프리카’라는 별명처럼 유사 한국인으로 사랑받던 오취리는 한국인의 인종차별 문제에 목소리를 냈다가 뭇매를 맞고 방송계에서 퇴출당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괴롭힘을 당한다. 이는 유사 한국인에게 느끼는 친밀감과 동화는, 언제든지 그 ‘다름’이 드러나는 순간 인정을 철회하고 타자를 가혹하게 배제할 수 있는 불안한 기제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오취리를 배제하는 과정에서 흑인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인종차별이 그대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은 조건부 수용의 한계를 노출한다. 부정할 수 없이 다국적·다인종 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외국인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유사 한국인 만들기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우려스럽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조나단과 파트리샤를 ‘K남매’, 조나단을 ‘유교 보이’라고 칭하거나 핀란드인 레오를 ‘허위 매물’이라고 부르는 모습이 여기에 해당한다. 카니 역시 쿠팡과 한국 음식, 한국 드라마를 찬양하며 K팝 신에서 일한다. 카니의 유튜브에 출연한 외국인 친구 메디와 파마는 한국이 살기 편한 나라라서, 고향인 파리에 가면 오히려 불편하고 답답하다며 웃는다. 이 장면은 ‘대한 프랑스인’이라는 제목의 쇼트폼으로 인기를 끌었다. 과거에 비해서 많이 열린 것처럼 보이지만, 외국인 며느리에게 국적불문 한복을 입히던 감수성에서 멀리 오지 못한 셈이다.
카니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고, 프랑스 출신이자 엘리트이며, 한국을 사랑한다. ‘흑인이라도’ 수용될 만한 유사 한국인의 조건을 갖추었으며 한국인이 좋아하는 ‘흥이 많은 흑인’ 같은 스테레오 타입에 딱 맞춤한다. 심지어 댄서기까지. 그러나 이론적 프레임만으로는 살아 있는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감정을 오롯이 담아낼 수 없다. 카니의 용맹함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은 어떤 전형성을 이탈하며 이전에 없었던 영역에 새로운 균열을 낸다. 누구보다 밝지만 ‘상처가 많다’는 말에 즉각 눈물을 흘릴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남모를 고충도 함께 간직하고 있을 카니, 한국의 습식 화장실이 싫고 달고 짠맛이 공존하는 맛은 공감할 수 없는 카니 역시 카니의 모습이다. 처음에는 외국인인 카니를 낯설어 했다던 시모가 카니를 진심으로 아끼는 모습이나, 남편과 서로 사랑하는 모습, 키나 외국인 친구들과 나누는 우정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카니는 파트리샤와 흑인 여성의 스킨케어 방식을 상의하며 유색 인종 여성이 여성성을 향유하는 방식을 공유하고(실제로 파트리샤와 카니의 등장으로, 비로소 흑인이 어떻게 화장하는지 알았다는 반응이 많을 만큼 유색인종, 특히 여성의 특성은 미디어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친구들과 프랑스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 카니가 유튜브 제작진과 구독자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순간, 외치고 싶다. “봤니? 봤어? 봤냐고!” 조건부 수용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환대는, 생각보다 거창하거나 너무 먼 미래가 아니다.
참고자료 : 안진, ‘나는 왜 백인 출연자를 선택하는가’, <미디어, 젠더&문화> 제30권 3호,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2015.
박소정, 김지윤, 장시연 외 1명, ‘샘 오취리의 스타 이미지 분석을 통해 본 한국 다문화주의의 발전과 한계’, <미디어, 젠더&문화>, 제36권 1호,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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