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스를 오픈소스로 공개합니다(AREMIS Goes Open Source).”
지난 3일 데니스 홍(54) 미국 UCLA대(기계항공공학과)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휴머노이드 로봇 학회인 ‘미국전기전자학회 로봇및자동화 분과(IEEE-RAS) 휴머노이드 컨퍼런스’에서 공식 발표하겠다고 했다.

아르테미스는 그가 소장으로 있는 로봇연구소 로멜라(RoMeLa)의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2023년 공개 당시 ‘세계에서 가장 걸음이 빠른 로봇’(초속 약 2.1m)으로 화제가 됐고, 지난해 로보컵 축구대회에서 우승하며 빼어난 균형감각과 운동능력을 자랑했다. ‘로봇 춘추전국 시대’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앞선 휴머노이드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아르테미스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정보를 무료로 공개하겠다는 거다.
‘젊은 천재 과학자’(파퓰러 사이언스), ‘로봇계의 다빈치(워싱턴포스트 매거진) 등으로 불려온 홍 교수는 왜 이런 ‘바보 같은 선택’을 한 걸까. 이메일로 직접 물어봤다.
-아르테미스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이유는
“2010년 (소형 로봇인) 다윈-OP를 오픈소스로 공개했을 때 그 효과를 직접 목격했다. 다윈-OP는 전 세계 연구실과 대학에서 널리 쓰이면서 수많은 연구 논문과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켰다. 단순히 하나의 로봇이 아니라 하나의 연구 생태계를 만들었다. 아르테미스 역시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새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특히 아르테미스가 실제 사람 크기(몸길이 약 142㎝)에 동적 보행(dynamic walking, 속도·관성 등을 제어해 사람처럼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걷는 방식)이 가능한 고성능 휴머노이드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질 거다. (개인적으로는) 다윈-OP를 통해 한 푼도 경제적 이득을 본 적이 없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큰 성과, 더 많은 기회와 협력, 그리고 학문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었다. ‘나누면 더 커진다’는 것은 연구자로서 실제로 체험한 진리다.”
-언제, 어떤 식으로, 어디까지 공개하나
“단순히 설계도뿐 아니라, 제어 소스코드와 알고리즘까지 공개한다. 로멜라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할 예정인데, 복잡한 시스템이라 자료를 정리하고 이해하기 쉽게 구성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한번에 모든 것을 올리기보다는,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공개할 예정이다.
-로봇 개발 경쟁이 치열한데, 전례가 있나?
“성인 크기에 가까운 휴머노이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한 사례는 많지 않다. 독일 본 대학교 팀이 개발한 ‘님브로(NimbRo)-OP’와 ‘님브로-OP2(X)’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공개가) 전 세계 로봇 연구자들에게 주는 선물, 특히 한국 로봇 커뮤니티에 대한 작은 기여라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휴머노이드 개발을 강하게 밀고 있지만, 아직 성인 사이즈 휴머노이드 로봇의 동적 보행 분야에서는 뚜렷한 성과가 많지 않다. 아르테미스의 기술이 한국 로봇 연구자들에게 하나의 도약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한국 로봇이 특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오늘날 한국의 휴머노이드 연구는 조작(manipulation) 쪽에선 훌륭한 기술이 있지만 보행 (locomotion)에선 여전히 비교적 오래된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연구 의지나 지원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수학적 모델링과 첨단 제어 이론 등 오랜 시간을 축적해야만 가능한 분야라는 특성도 있다. 그런데 최근 머신러닝의 발전이 이런 상황을 바꾸고 있다. 예전에는 고도의 전문 지식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영역도 이젠 좋은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기만 하면 로봇을 학습시킬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는 휴머노이드 연구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추고, 새로운 도전자들에게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특히 미국 민간 기업들이 이끄는 흐름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인공지능(AI) 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특히 AI와 결합한 휴머노이드 연구에서 충분히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로봇의 미래는 역시 AI에 달린 건가
“휴머노이드 로봇이 실제 환경에서 유용하게 쓰이려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단순한 규칙기반 제어나 전통적인 로봇 공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많은 연구자가 피지컬 AI(실제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고, 로봇·자율주행차 등을 통해 실제 물리적으로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는 AI)가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피지컬 AI가 모든 문제의 만능열쇠는 아니다. 현실과 시뮬레이션 간의 간극, 데이터 부족, 안정성과 재현성 문제 등의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는 ‘큰 가능성을 인정하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로봇 공학적 원리와 피지컬 AI가 서로 보완하며 발전할 때, 진짜 실용적인 휴머노이드가 탄생할 것이다.”
-오픈소스로 공개되는 아르테미스가 그 테스트베드가 될 수도 있겠다
“피지컬 AI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물리적 플랫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제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는 게 아직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가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활용한다. 이때 시뮬레이션이 잘 작동하려면 구조가 단순할수록 유리하다. 그래서 중국 로봇처럼 직렬 체인 구조를 가진 단순한 휴머노이드가 피지컬 AI 연구에 적합한 경우가 많다. 반면 아르테미스는 복잡한 링크 구조와 모델 기반 제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피지컬 AI 연구 초기 단계에서는 다루기 까다로울 수 있다. 나중에 복잡한 구조를 다루는 시뮬레이터가 필요해질 때는 아르테미스 같은 로봇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같은 AI 로봇은 어떤가. 일론 머스크는 옵티머스가 “테슬라 기업 가치의 최대 80%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옵티머스의 초기 개발 과정에 일정 부분 함께했다. (과거) 아르테미스의 주요 소프트웨어 아키텍트와 하드웨어 디자이너 등이 지금은 테슬라로 옮겨 옵티머스를 만들고 있다. 둘은 직접적인 계승 관계는 아니지만, 분명히 연결된 존재다. 그 때문에 나는 아르테미스를 옵티머스의 ‘삼촌’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옵티머스가 상용화를 앞당기는 거대한 ‘엔진’이라면, 아르테미스는 근본적 이해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실험실’이다. 두 길은 달라 보이지만 서로 보완적이다. 아르테미스의 오픈소스 공개는 이런 맥락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옵티머스가 산업의 미래를 개척한다면, 아르테미스는 학문과 산업이 공유할 수 있는 지적 기반을 제공할 거다.”
-중국의 로봇들도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부스터 T1, 유니트리 G1, 유비테크 S2 등이 기계적 완성도와 대량 생산 능력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 로봇이) 단기간에 이런 수준까지 올라온 것은 정부의 집중 투자와 기업의 과감한 실행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로멜라의 연구가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줬다는 사실이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 논문에서 영감을 얻었고, 어떤 경우에는 우리 기술을 직접 가져다 활용하기도 했다. 심지어, 조금 황당하게도, 아르테미스의 기술을 거의 그대로 모방한 뒤 특허 출원한 사례도 있다(웃음). 눈여겨볼 점은 중국 로봇들이 기존의 아이디어를 다듬고 훌륭하게 실현해내는 데 강점이 있고 매우 뛰어난 구현 능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올해 로보컵 축구대회도 중국팀이 우승했다. 로멜라 팀은 왜 불참했나.
“우리 팀이 지난해 대회에서 우승한 직후 로보컵 연맹이 중국의 3개 휴머노이드 기업(부스터·푸리에·유니트리)과 공식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후 출전 로봇 수를 3대로 늘리는 등 대회 규정과 운영 방식에 큰 변화가 있었다. 문제는 이런 변화를 올해 대회 3개월 전 갑자기 발표했다는 점이다. 아르테미스는 세상에 단 두 대뿐이라, 현실적으로 참가가 불가능했다. 중국 기업인 부스터 측에서 자사 로봇을 쓰라고 제안했지만, 서로 다른 로봇을 통합하는 것은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결국 불참할 수 밖에 없었다. 올해는 칭화대 팀이 우승했는데 부스터의 로봇을 활용했다. 사실 부스터 자체가 칭화대팀에서 파생된 회사이기도 하다.”
-칭화대 팀과 비공식 경기를 했다고 들었다.
“칭화대 팀은 2005년부터 로보컵에 참여해온 역사 있는 팀이고, 우리 팀과 로보컵에서 여러 번 경기를 치른 인연이 있다. 이번에 우리가 불참하게 되자, 직접 중국에서 로멜라 연구실까지 찾아와 비공식 친선 경기를 요청했다. (바뀐) 공식 규정 그대로는 아니고, 작은 필드에서 적은 로봇 수로 진행했지만, 결과는 (로멜라) 6 : (칭화대) 2였다.”

-여전히 로봇 축구의 최강자임을 증명한 셈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로멜라는 새로운 로봇을 만들고, 그것을 실제 세계에서 시험하는 무대로 로보컵을 활용해 왔다. 목표를 달성한 뒤에는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물러나곤 했다. 다른 팀들에게 기회를 주고 우리는 또 다른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서다. 2007년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어반 챌리지에서 자율주행차로 세계 3위를 한 뒤, 그 기술을 활용해 2011년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후 40여 개의 새로운 보행 방식의 로봇, 16종 이상의 휴머노이드를 개발해 미국 휴머노이드 연구를 선도해 왔다. 이젠 또 다른 전환점을 준비할 때라고 생각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말하기엔 이르지만,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재료와 구조 자체의 패러다임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로봇은 전선 하나만 끊어져도 멈추거나 쓰러지지만, 인간은 손가락을 베어도 곧 치유된다. 이런 자연의 회복력(robustness)을 기계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탐구하고 있다. 비(非)휴머노이드 영역에선 로봇 아트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도시건축 바이시티 비엔날레(UABB)에 초청받았고, 이달 말 서울에서 열리는 휴머노이드 학회의 로봇 패션쇼에서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개인전도 준비하고 있다.”

-왜 로봇 아트에 관심을 갖게 됐나
“단순히 ‘로봇이 잘 움직이는가?’를 넘어 ‘(로봇이) 우리를 잘 움직이는가?’라는 질문까지 탐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학에서는 성능·효율·안정성이 최우선이지만, 예술은 그 너머에서 시작된다. 로봇이 유용한 일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경이와 상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이미 예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거다. 로멜라가 만든 발루(BALLU)나 코스모(COSMO) 같은 작품들이 그런 사례다. 내게 로봇 아트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로봇을 매개로 기술과 인간성의 관계에 던지는 새로운 질문이다. 로봇을 통해 이제 기능을 넘어 꿈을 이야기하고 싶다.”

-연구에 어려움은 없나
“현재 미국의 정치 환경은 과학 연구에 큰 불확실성을 만들고 있다. 단기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원을 줄이거나 제약을 가하는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연구자들이 도전적인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흔드는 일이다. 로멜라의 경우도 직접적인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 연구비 지원 기회가 줄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국제학회에 학생들을 파견하는 데도 제약이 커졌다. 특히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은 비자 문제나 이동 제한으로 학문적 교류 자체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그탓에 인재 확보와 유지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학생들 사이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나는 과학과 교육이 단순히 국가 경쟁력의 수단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기반이라고 믿는다. 지금과 같은 흐름은 매우 우려스럽다.”
◇데니스 홍은=한국계 미국인 로봇공학자다. 한국명 홍원서.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초·중·고를 졸업했다. 버지니아텍 교수 시절 로멜라를 설립, 시각장애인용 자동차, 미국 최초의 성인 크기 휴머노이드 로봇 찰리 등을 만들어 주목 받았다. 이후 UCLA로 옮겨 로봇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아버지가 박정희 정부 때 백곰 미사일을 개발한 한국 항공우주공학계의 선구자 고 홍용식(1932~2022년) 박사(전 인하대 교수), 형 존 홍(한국명 홍준서)은 미 국방연구원(IDA), 누나 줄리 홍(한국명 홍수진)은 미국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암연구소 연구원인 과학자 집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