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대통령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의 취임 첫해는 그야말로 ‘최악의 해’였다. 이란의 주요 동맹 세력 수장들과 이란혁명수비대(IRGC) 최고 사령관들의 잇따른 암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과 핵 시설 파괴에 더해 나날이 악화하는 경제난과 전례 없는 가뭄까지 겹쳤다.
설상가상의 악재 속에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최근 공개 연설에서 이례적으로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지난 7일 ‘학생의 날’을 기념해 열린 연설에서 “누군가 할 수 있다면, 제발 나서 달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관료들과 가진 회의에서도 정부가 “꼼짝달싹 못 하는, 막다른 길에 처해 있다”며 “취임 첫날부터 재앙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으며, 그것이 멈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겪는 문제들이 미국이나 이스라엘 잘못이 아니라 이란이 자초한 결과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패와 파벌 간 갈등, 수십 년에 걸친 정부의 재정 지출 관행이 오늘의 위기를 낳았다며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라고 말했다.
이달 초 지방 주지사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중앙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하고 각자 문제를 해결하라”며 “대통령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무력감을 토로하는 발언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빠르게 확산하면서 사회적 논란을 낳고 있다. 이란 정치권에서는 국가적으로 중대한 시점에 정부를 약하고 무능하게 보이게 만든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보수 세력들은 대통령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란의 방송인 겸 앵커 알리 지아는 “페제시키안은 정부를 통치하지 않고 있다. 자동조종 장치를 켜놓고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주요 국가 사안에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이란의 정치 구조 속에서 대통령은 외교와 국내 정책 일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한적 권력을 갖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 모두 같은 조건에 처했지만,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한 대통령은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처음이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역대 이란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 집권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페제시키안 대통령 취임식 당일,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테헤란에 온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스라엘에 의해 암살됐다. 지난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으로 이란 군부 수뇌부와 핵 과학자 등이 사망했고, 이란 핵시설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서방의 경제 제재는 이란의 숨통을 죄고 있다. 미국은 이란의 석유 수출과 금융 시스템을 겨냥해 제재하고 있으며, 지난 9월 유엔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복원하기로 했다. 제재 완화를 위한 미국과의 핵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이란 리알화는 폭락했으며, 식료품 가격은 급등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이 60%에 달한다고 전한다.
게다가 6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 속에 심각한 물 부족으로 단수 사태가 벌어지고 있으며, 에너지 부족으로 전력 공급도 원활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솔직하게 무기력함을 털어놓는 것에는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하마드 알리 압타히 이란 전 부통령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라며 “진실을 숨기고 기대감을 높인 다음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을 피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평했다.
영국 국제정책연구소 채텀하우스의 중동·북아프리카 담당 이사 사남 바킬은 “이란은 현재 국내적으로도, 미국과의 대치 상황에서도 마비 상태에 빠져 있다”며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좌절감을 표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자신이 처한 제약과 한계를 지적하며 정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페세지키안 대통령에게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이란 개혁파 수장 아자르 만수리는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통치하는 것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제학자 아미르 호세인 칼레기는 “외교 정책에 중대한 변화 없이는 국내 문제에서도 돌파구를 마련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정국 불안을 우려해 페제시키안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연설에서 페제시키안 대통령에 대해 “근면하고 명예로운 인물”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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