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사에서 중요한 남북전쟁(1861∼1865)은 한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서만 통용되는 명칭이다. 정작 미국인들은 이를 ‘시빌 워’(Civil War·내전)라고 부른다. 그럼 남북전쟁이란 표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19세기 후반 서양 역사에 관한 문헌들을 일본어로 옮기는 데 진력하던 일본 학자들이 번역한 용어가 그대로 한국에 전해진 결과로 풀이된다. 미국이란 거대한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싸웠다는 점에서 제법 그럴듯한 의역이라고 하겠다.
남북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미국인은 49만명이 넘는다. 제2차 세계대전 전사자(약 40만명)보다 많은 숫자다. 그럼에도 미국이 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승자인 북부가 패자인 남부를 포용한 덕분이다. 1865년 남군이 항복 의사를 밝히자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훗날 대통령 역임)은 최대한 너그러운 조건을 제시했다. 종전 후 3년이 흐른 1868년 연방정부는 옛 남부의 정치 지도자와 군대 지휘관 전원을 사면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인들 사이에 ‘남북전쟁 이래 미국 사회가 이처럼 분열된 적이 없었다’는 탄식이 쏟아졌다. 트럼프 등장 이전 미국은 동맹국 존중, 개발도상국 원조, 소수자 우대 등에서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를 깡그리 무시한 채 ‘미국과 백인이 우선’이란 입장이 확고하다. 지난해 대선 승리로 2기 집권에 성공한 뒤로는 불법 이민자 추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죽하면 “더는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는 한탄이 나오겠는가.
한인 교포가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LA)에서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시위가 격화해 군대까지 투입됐다. 트럼프의 79회 생일인 그제는 반정부 집회가 미 전역으로 확산했다. 이에 지난해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시빌 워’가 새삼 세계인의 이목을 끈다. 극심한 내분 끝에 캘리포니아·텍사스 두 주가 연합해 연방정부에 반기를 들고 나서 내전이 벌어진다는 내용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허무맹랑한 픽션”이란 말을 들었겠으나, 요즘은 “예언이나 다름없다”는 재평가가 나온다. 이러다 정말 제2차 남북전쟁이 터질 수도 있겠다 싶어 걱정스럽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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