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트 공작 부인 캐서린 타계… 버킹엄 궁 “애도”
윔블던 대회 준우승자 껴안은 파격 행보로 명성
2022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96세를 끝으로 타계한 뒤 영국 왕실에서 생존해 있는 최고령자였던 켄트 공작 부인 캐서린이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캐서린은 엘리자베스 2세의 사촌 동생인 켄트 공작 에드워드(1935∼ )의 부인이다.

5일(현지시간) 영국 뉴스 채널 ‘스카이뉴스’ 등에 따르면 캐서린은 전날(4일) 런던 시내의 왕실 소유 건물인 켄싱턴 궁(宮)에서 가족에 의해 둘러싸인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버킹엄 궁은 고인을 추모하는 뜻에서 조기를 게양한 데 이어 이날 성명에선 “켄트 공작 부인 전하의 서거를 깊은 슬픔으로 발표한다”며 “(찰스 3세) 국왕과 (카멀라) 왕비, 그리고 왕실의 모든 구성원은 (남편인) 켄트 공작은 물론 그 자녀, 손자들과 함께 고인의 별세를 애도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켄트 공작 부인의 평생에 걸친 왕실 공무에의 헌신, 음악에 대한 열정, 특히 젊은이들과의 깊은 교감을 애틋하게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음악에 대한 열정’이란 고인이 어려서부터 피아노·오르간·바이올린 등 악기를 수준급으로 연주했으며, 한때 왕실 공무에 은퇴하고 13년간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친 경력을 일컬은 것으로 풀이된다.

1933년 2월 ‘캐서린 루시 매리 워슬리’라는 본명으로 태어난 캐서린은 평범한 인생을 살다가 1961년 영국 왕실 구성원인 켄트 공작 에드워드와 결혼하며 일약 유명인이 되었다. 에드워드는 엘리자베스 2세의 할아버지인 조지 5세 영국 국왕(1910∼1936)의 손자로 엘리자베스 2세와는 사촌 관계에 해당한다. 엘리자베스 2세의 장남인 현 찰스 3세 국왕에게는 삼촌뻘이 되는 셈이다.
캐서린과 에드워드의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남편과의 사이에 2남 1녀를 낳았으나 정작 부부는 별거와 재결합을 반복하며 이혼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다만 2013년 당시 80세이던 에드워드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로 두 사람은 켄싱턴 궁에서 함께 지내며 다시 가까워졌다고 한다.

보수적 분위기가 만연한 영국 왕실에서 캐서린은 비교적 자유분방한 행보를 선보였다. 1993년 윔블던 테니스 대회 여자 결승전에 진출한 야나 노보트나(체코) 선수가 당대의 세계 챔피언 슈테피 그라프(독일)에게 분패해 준우승에 그친 뒤 오열하자 캐서린이 직접 다가가 어깨를 껴안으며 위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왕실의 의전 규범에 어긋난 것으로 윔블던 협회가 캐서린과 멀어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다만 당시 경기를 지켜본 젊은이들 사이에선 “승자 아닌 패자와도 공감할 줄 하는 왕실 구성원의 모습이 신선했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날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고인은 생애 내내 선행으로 모두에게 인간적 감동을 선사했다”고 캐서린을 추모했다. 영국 정부는 왕실과의 협의를 거쳐 캐서린의 장례 형식 및 일정을 확정해 대중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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