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정상회의 때 대통령 옆에 ‘한국산 유리병 생수’가 놓인 이유는?

2025-11-09

지난달 31일부터 이틀간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 앞에는 유리병에 담긴 생수가 두 병씩 놓였다. 정부 주최 국제행사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려는 세심한 노력으로 보였다.

이날 놓인 병생수는 ‘국내산’이다. 재사용 유리병을 사용하는 국내 음료업체 ‘소우주’에서 만들었다. 소우주의 최수환 대표는 지난 7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지난해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이어서 이번 APEC에도 소우주 생수를 공급했다”며 “국제적으로 환경이나 미세 플라스틱, 환경호르몬 문제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지양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정상회의 때 유리병 생수, 그중에서도 국내에서 생산한 생수를 (주최 측에서) 찾은 것 같다”고 전했다.

유리병은 일회용 플라스틱과 달리 여러 차례 재사용이 가능하다. 재사용하지 않더라도 멸균팩, 종이팩 등에 비해 재활용도 쉽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유리병 재활용율은 80%에 달한다. 종이팩은 19%, 멸균팩은 3%다. 페트병의 재활용율은 88%지만 대부분이 ‘중저급 재활용’이고 ‘고품질 재활용’은 15% 수준에 불과하다. 소우주는 유리병에 생수를 담아 판매하고, 사용한 유리병은 회수해 재사용한다.

최 대표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가 90%를 차지하는 생수 시장에서 재사용과 재활용이 가능한 유리병 모델을 정착시키고 싶어 2년여 전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플라스틱은 재활용해도 원래 제품보다 더 품질이 낮은 플라스틱으로 재활용되는 ‘다운밸류’가 일어나지만 유리는 그렇지 않다. 여러 차례 같은 용도로 재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재활용하더라도 품질이 좋은 유리로 재탄생한다”며 “종이팩과 멸균팩은 재활용률이 낮고 플라스틱 코팅이 돼 있어 미세플라스틱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재활용률은 페트병에 비해 높지만, 자원을 회수해 재활용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점은 고민거리다. 소우주의 유리병 회수율은 40%대 수준이다. 기존에는 소주회사들이 ‘초록색 표준병’을 회수하는 시스템에서 착안해 초록색 소주병에 물을 담아 판매했으나 ‘술병’ 이미지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해 투명 병으로 용기를 바꿨다. 온라인에서 가정용으로 판매하던 공병도 보증금을 지급하며 무료로 회수했지만 회수율이 비교적 저조했다.

최 대표는 “10개 이상의 병만 회수하다 보니 일반 소비자는 보관 등을 번거로워하시는 경우가 많았다”며 “호텔, 레스토랑, 기업, 행사 등 B2B 시장에서는 계속 회수하고 재사용하되 개인 대상 택배 회수는 중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유리를 제조하는 공정에서도 탄소는 배출되지만, 유리 용기는 평균 12~20회 재사용할 수 있다. 글로벌 환경단체 제로웨이스트유럽 분석에 따르면 유리병을 3번만 재사용해도 일회용 페트병보다 탄소배출량이 적어지고, 재사용을 반복하면 탄소배출량을 최대 70%까지 줄일 수 있다. 유리병은 미세플라스틱이나 나노 플라스틱으로부터도 비교적 안전하다. 국내 생수 시장은 지난 5년 새 2배로 불어났지만 페트병 재활용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정부는 내년부터 연간 5000t 이상의 페트병을 사용하는 먹는샘물 및 음료 제조업체에 재생원료를 10% 이상 사용할 것을 의무화했으나, 유럽연합의 페트병 재생원료 사용율(25%)에는 한참 못 미친다.

최 대표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음료나 식품이 유리병에 담겨있는 게 당연했는데, 요즘 어린 친구들은 페트병, 종이팩, 플라스틱 파우치에 익숙하고 유리병을 잘 쓸 일이 없다”며 “무겁고 깨질 수는 있지만, 자원순환이 가능한 것을 넘어서 건강하게 먹으려면 유리병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젊은 세대가 경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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