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몸도, 큰 우주도 인간은 볼 수 없지만…곰리의 조각은 보여준다

2025-06-23

“우리의 몸은 우주만큼이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자율적 존재입니다. 우리는 몸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될 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우주를 알게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과 우주, 두 미지의 영역을 연결하고 탐구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영국 출신 조각 거장 안토니 곰리(75)는 조각으로 그런 시도를 해 왔다. 강원 원주시 뮤지엄산에서 지난 20일부터 열린 곰리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DRAWING ON SPACE’와, 곰리와 일본 출신 건축가 안도 다다오(84)가 협업해 설계하고 개인전과 함께 문을 연 공간 ‘GROUND’에서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안도는 2013년 문을 연 뮤지엄산의 공간을 설계했다.

뮤지엄산 본관 청조갤러리에서 오는 11월30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에서는 철선으로 된 둥근 고리들이 눈에 띈다. 갤러리 1관에서는 2015~2017년 제작된 ‘Liminal Field’ 연작 7점이 곧게 선 사람의 형태로 보는 이들을 기다린다. 둥근 고리들은 땅에서부터 서로 붙어 다리와 몸통, 머리를 이룬다. 전시장의 흰 벽을 배경으로 두고 서 있는 조각은 가만히 보면 공기 방울의 집합체 같다. 고리의 두께는 얇아 바람이 불면 흔들릴 수도 있을 법한 정도다. 각 조각의 높이는 1m84~2m로, 키가 큰 성인과 비슷하다.

갤러리 3관은 Liminal Field의 크기를 대폭 확장해 놓은 듯한 ‘Orbit Field Ⅱ’(2024)가 가득 메우고 있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용수철 장난감을 한껏 늘려놓은 것 같다. 굵기가 23㎜인 대형 철제 원형구조물은 총 37개는 크기가 제각각이지만 성인이 들락날락할 수 있을 만큼 커서 전시장 천장에 닿을 정도다. 관객은 전시장 안에서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철제 원을 넘나들어야 한다.

인간은 모두 신체를 갖고 있지만 그 안의 모습을 보지는 못한다. 인간은 우주에 속해있지만 낮과 밤, 계절의 변화 정도를 빼고는 우주의 움직임을 알지 못한다. 관객은 곰리가 철제 고리로 만들어 놓은 조각을 보면서 신체와 우주의 움직임을 상상하게 된다.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전시장의 흰 벽과 조명은 조각의 존재감을 줄이고, 보는 이가 상상력을 발휘해 남은 공간을 채우게 한다.

상설 전시 공간인 GROUND에서도 화두는 공간과 인체다. 하부 지름이 25m, 높이가 8m인 반구 형태의 공간의 맨 꼭대기에 지름 2.4m 둥근 구멍이 뚫려 있다.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은 시간에 따라 바닥을 비추는데, 로마제국의 신전이자 성당인 판테온과 그 형태가 같다. 돔 형태의 구조 때문에 보는 이들이 내는 말소리와 발소리가 울리며 공간을 채운다.

또 눈에 띄는 것은 외부로 통하는 반원 형태의 구멍이다. 그곳을 통해 앞마당 같은 공간으로 나갈 수 있고, 넓게 펼쳐진 능선과 산을 가득 채운 나무들도 볼 수 있다. 공간 바닥에는 ‘Block Works’ 연작 7점이 전시돼 있다. 육면체 벽돌을 서거나 앉거나 누운 사람 형태로 쌓은 듯한 철제 조각이다. 얼핏 보면 녹이 슬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곰리는 “압축된 흙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흙이) 대기와 반응하며 변하기 때문에 일부러 철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개관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GROUND를 공개하며 기자들과 만난 곰리는 “공간이 완성된 건 어제(18일)였다. 오늘이 공간 탄생의 첫 순간”이라며 “관람자와 관람 대상이 분리되지 않고 한 공간의 부분이 되는 경험을 한 것 같다. 이 작품을 처음으로 완성해주신 분들이 바로 여러분”이라고 말했다. 개인전에서 보는 이의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한 곰리는 상설 공간에서도 보는 이의 참여로 작품이 비로소 완성된다고 했다.

곰리는 “작품으로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선언하거나 우주론을 주창하려는 게 아니다. 인간이 이 세계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길 바란다”며 “작품을 경험하는 관람자가 답을 찾을 수 있다. 관람자의 경험이 곧 작품의 주제”라고 말했다. 공간의 천장과 옆부분에 뚫어놓은 구멍은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변화가 작품에 간섭해 변화하는 모습을 담기 위해서이다. 그는 “벌레들이 작품과 접촉하기도 할테고, 겨울엔 눈도 내릴 것이다. 공간이 변화에 노출될 텐데, 그 변화를 조망하는 것도 기대가 된다”며 “내부와 외부위 경계를 허물고, 밖에서의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다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게 (공간의)기획 의도”라고 말했다.

곰리는 초기부터 자신의 몸을 석고로 캐스팅했고, 이후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작업을 하는 등 오랜 기간 다양하고 실험적인 조각을 해 왔다. 그는 “조각이란 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예술”이라며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기계의 종이 돼 화면에 빠져 살고 있다. 조각은 직접적으로 만질 수 있고, 또 실질적인 경험을 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개인전과 GROUND를 모두 관람할 수 있는 안토니 곰리 패키지는 대인 3만9000원이다. 오는 9월까지는 3만5000원으로 할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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