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궁신접수(躬身接受)의 삶의 미학

2025-09-07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수많은 순간을 마주한다. 뜻하지 않은 실패, 인간관계의 갈등, 나를 무시하는 말들, 그리고 인생이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는 순간들. 이럴 때 우리는 분노하거나 회피하거나, 때로는 외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을 오래도록 성찰해온 동양 철학자들은 그 모든 상황 앞에 하나의 태도를 권유했다. 바로 “궁신접수(躬身接受)”, 몸을 낮추어 스스로 받아들이는 자세다.

궁신접수는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세상의 무게를 밀어내지 않고, 내 안으로 끌어들여 소화해내는 내면의 힘이다. 겸손을 넘어선 ‘존재의 수용’이며, 그 수용을 통해 변화와 성장을 가능케 하는 성숙이다.

물이 담기려면 그릇이 낮아야 한다. 높은 그릇은 흘러넘칠 뿐이다. 궁신접수는 바로 이 ‘낮춤’의 철학이다. 우리는 흔히 더 높이 오르고, 더 많이 가지며, 더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진정한 성장은 몸을 낮추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일이다. 궁신접수를 실천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유순해 보이지만 속은 강하다. 외부의 비난과 오해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미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타인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수용은 곧 평온이며, 성숙이다.

세상의 많은 지혜자들이 역경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현실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통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되 꺾이지 않는 대나무처럼. 궁신접수는 그런 유연함을 길러준다.

나이가 들수록 ‘이제는 나도 이해받아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인생 후반에 필요한 태도는, 오히려 더 낮추고 더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젊을 땐 기세로 부딪히고 논리로 설득하려 했지만, 이제는 침묵과 수용으로 관계를 풀어간다. 손주가 스마트폰만 볼 때, 자식이 조언을 무시할 때, 삶이 외로워질 때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깊은 인생의 지혜다. 몸을 낮춘다고 해서 존재가 작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 비로소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게 된다. 자존심을 내려놓으면 관계가 회복되고, 고집을 버리면 삶이 부드러워진다.

궁신접수는 자신을 비우는 일이다. 세상의 무게를 억지로 짊어지지 않는 태도이며, 약자의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본질을 꿰뚫은 이의 적극적 수용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변하지 않는 타인, 예측할 수 없는 인생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선택. 그것은 몸을 낮추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외부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평온을 얻고,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

삶은 때론 버티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오늘 하루도 우리 모두, ‘궁신접수’의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해 보자.

김진대 익산시평생학습관 명예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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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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