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오후 4시(현지시간)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용열차 '태양호'가 베이징역에 도착했다. 이날 오전 6시경 동북 랴오닝성의 선양을 지나는 열차가 외신 카메라에 잡힌 지 10시간 만이다.
김 위원장은 5차 방중 일정을 전용차량 번호판 외교로 시작했다. 4시 19분경 김 위원장이 탄 벤츠 마이바흐 전용차 행렬은 젠궈먼 사거리를 통과해 차오양구의 북한 대사관으로 향했다.

열차에 싣고 온 김 위원장 차량에는 한국전쟁 휴전일인 7·271953 번호판이 선명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톈진으로 입국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아우루스 전용차에 러시아 대사관 고유번호인 ‘198 ·852사(使)’를 붙인 것과 대비를 이뤘다. 북한은 정전협정일인 1953년 7월27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로 부른다. 김 위원장 차량에 이 번호판을 붙인 건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했고,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6.25전쟁을 항미원조전쟁으로 주장해온 중국과 반미혈맹이라는 메시지를 과시하는 것이다.
이날 김 위원장의 행렬은 중국 경찰 선도차와 구급차 등 28대로 이뤄졌다. 다만 지난 2019년 4차 방중 당시와 달리 모터사이클 의전은 제공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에 딸 김주애를 동반했다. 중국 신화통신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공개한 베이징역 도착 사진에는 김 위원장 뒤에 딸 김주애가 함께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김주애 뒤에는 하얀 재킷을 입은 최선희 외무상이 뒤따랐다. 사진에 부인 리설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국정원은 "김정은이 이번 방중에 딸 김주애를 동반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김주애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다"고 입장을 냈다. 김정은이 딸 주애를 해외방문 일정에 대동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이날 김 위원장이 중국 전승절(戰勝節·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대회) 참석을 위해 전날 평양에서 출발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중국 권력서열 5위의 차이치 정치국 상무위원과 24위권 정치국위원을 겸하는 왕이 외교부장이 영접했다. 이날 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베이징역 도착 사진엔 차이치 상무위원과 왕이 외교부장 , 쑨웨이둥 외교부 부부장, 왕야쥔 북한대사, 인융 베이징 시장이 김 위원장 일행을 맞았다. 김 위원장의 영접 의전은 서열 24위권의 정치국위원인 천민얼 톈진시 당서기가 맞이한 푸틴 대통령보다 높다. 다만 북중 관계를 담당하는 류젠차오 중앙대외연락부장이 이날 베이징역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의 낙마설이 힘을 얻게 됐다.

앞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최 외무상과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장과 전용열차 내 집무실에서 대화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출발에 앞서 중산복 차림으로 조용원·김덕훈 당 비서, 최 외무상과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드러냈다. 평양을 출발할 때 중산복 차림의 김 위원장이 양복 차림으로 베이징에 입성하면서 3일 열병식 복장도 주목된다. 양복 차림으로 지난 1959년 김일성의 뒤를 이으면서 열병식의 주인공인 시 주석을 예우할지, 아니면 중산복 차림으로 중국과의 대등외교를 과시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서 머무는 숙소와 시 주석과 양자 회담 시점도 주목된다. 2일 시 주석은 인민대회당에서 푸틴 대통령과 양자회담에 이어 관저인 중난하이로 이동해 소규모 협상을 이어갔다고 크렘린궁이 밝혔다. 또 푸틴 대통령이 전승절에 참가하는 다른 외국 정상들과 회담장으로 댜오위타이 18호각의 영상을 SNS에 공개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푸틴보다 격이 낮은 다른 건물을 배정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날 중국 관영매체는 김 위원장의 도착을 지각 보도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김주애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베이징 도착 속보를 내자 중국중앙방송(CC-TV)도 곧이어 김 위원장 뒤로 주애의 얼굴을 가린 신화사 사진과 함께 짧게 도착 사실을 알렸다.
이날 오후 베이징에 도착한 우원식 국회의장과 한국 대표단은 왕푸징의 리젠트 호텔로 배정됐다. 지난 2015년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호텔이다. 우 의장은 이날 “방중을 결정할 때 김 위원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면서도 “만나게 되면 한반도 평화 문제 대해 논의하겠지만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