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5개월 간 의대생 휴학·전공의 사직 등 의정갈등이 발생한 핵심 원인은 의대증원 정책 때문이다. 의정갈등을 단순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의 시작점으로 삼으려면 의료계 뿐 아니라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돌파구가 필요하다. 장기간 진통 끝에 의대증원 산출을 위한 플랫폼으로 법제화까지 마친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가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내년 4월까지 결정해야 할 2027학년도 의대정원이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15일 의료계에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이달 18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청문회 요구자료에서 “수급추계위 후보들에 대한 검토를 거쳐 이달 중 구성·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상적인 입시·대학교육 과정을 위해서는 2027년도 의대정원을 2026년 4월 말까지 결정해야 한다. 정 후보자는 9개월의 ‘골든타임’을 추계위의 신속한 가동을 통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정부는 의대정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올 4월 보건의료기본법을 개정했다. 복지부 장관 소속 독립 심의기구인 추계위를 설치해 의대정원을 비롯한 직종별 의료인력 추계를 심의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추계위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의료인력 양성을 위한 플랫폼으로 확정한 것이다. 인적구성은 정부 위원을 뺀 15명 중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공급자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과반인 8명이 되도록 했다. 의료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개정안에 따라 추계위 회의록과 안건, 추계 결과 등을 공개하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정책연구실에 의료인력수급추계센터를 신설해 이를 지원하도록 했다. 의대를 포함한 의료인력 추계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최종 결정권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가 갖는다. 소비자·환자단체에 이어 의협을 포함한 의사단체가 5월 중순께 후보 추천을 마쳤지만 계엄·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두달 넘게 출범이 중단된 상태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려는 공공의대도 추계위의 필요 의사인력이 산출돼야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복지부는 서둘러 추계위를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각 단체가 추천한 후보 뿐 아니라 복지부의 선정 기준도 제시하는 등 투명성 확보에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대정원 증원을 통한 의사 수 확대는 급격한 고령화 탓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사안이다. 정부도 의사 부족이 예상되자 2018년과 2020년 의대 증원을 추진했지만 의료계의 극심한 반발과 집단행동으로 실패했다. 27년만의 의대 정원 확대와 의료개혁이 윤석열 정부에서 드물게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이유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지역필수의료를 살리려면 의대 증원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단번에 2000명을 늘리겠다는 방법이 다소 과격했을 뿐, 방향성은 맞았다는 것이다. 그는 "추계위가 가동되더라도 외부 전문가에 의한 검증 등을 통해 국민들이 수긍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며 “의정갈등을 수습하면서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