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소멸하는 시대의 마지막 품위... 장석주 에세이집 '교양의 쓸모'

2025-12-12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라고 노래한 '대추 한 알'의 시인 장석주가 에세이집 '교양의 쓸모'(풍월당)를 펴냈다. 장석주는 이 책에서 교양은 생존의 방식이며, 지식보다 오래가는 힘이라고 말한다. 밥을 짓고, 걷고, 일하고, 늙어가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간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품격과 태도가 교양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가 놓치고 있는 것은 '깊이에 대한 감각'이다. '교양의 쓸모'는 그 감각을 잃어버린다면 인간은 결국 기술의 부속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경고한다. 저자는 들길을 걷고, 밥을 지어 먹고, 나이를 겪어내는 과정 속에서 마주한 작고 느린 풍경들, 카페의 낮빛, 도서관의 서늘한 기척처럼 자신의 몸으로 겪고 지나온 것들을 바탕으로 교양을 얘기한다.

일성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대신, 그 결을 읽어내는 일. 장석주는 바로 그것을 교양의 시작으로 본다. 그에게 교양은 거창한 학문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며 마음이 던지는 질문이고, 삶이 남겨놓은 무늬에서 비롯된다. 노동과 책임의 무게, 나이 듦의 체감, 타인의 고통을 흘려보내지 않는 민감함 등 작가가 천천히 꺼내놓은 장면들로 '지금 지켜야 할 품격'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양의 쓸모'를 통해 저자는 속도전을 잠시 멈추라고 말한다. 밖으로만 향하는 시선을 안으로 돌리라고 권한다. 대신 밥과 노동, 꿈의 이야기에 오래 머문다. 밥은 생존의 행위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이며, 노동은 정신을 붙드는 힘, 꿈은 지치지 않고 내일을 바라보게 하는 불씨다. 밥을 대하는 태도가 흐트러지면 노동이 건실해지기 어렵고, 노동이 힘을 잃으면 정신도 약해진다. 약해진 정신으로는 눈앞의 것 이상을 바라보기 어렵다.

그래서 작가는 청년 시절의 가난과 흔들림, 하루의 무게를 숨기지 않는다. 그가 머물렀던 파주·안성·제주·강원 산골과 절집의 시간이 책 속 문장들과 포개지며 새로운 울림을 만든다. '문장은 저자를 닮는다'는 말처럼, 사람은 자신이 읽어온 문장들에 의해 천천히 빚어진다. 이 책에는 저자가 평생 읽어온 문장들과 그 시간의 결이 고요히 배어 있다. 값 22,000원. oks3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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