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광장의 의제는 다 어디로 갔을까

2025-05-18

지난 8일 로마가톨릭 교회의 수장으로 선출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교황명을 ‘레오 14세’로 정했다. ‘레오’라는 이름을 들은 사람들은 바로 레오 13세(재위 1878~1903)를 떠올렸고, 본인도 추기경들과 만난 자리에서 레오 13세를 염두에 두었다고 밝혔다. 전임 교황 프란치스코는 가난과 평화, 피조물 보호의 상징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자기 이름으로 정하고 재임 기간 내내 ‘프란치스코’로 살려고 애썼다. 가난한 이들, 갈 곳 없는 이들을 찾았고 말 못하는 비인간 존재를 대변했다. 이런 맥락에서 레오 14세의 교황직 수행 준거는 레오 13세가 될 것이다.

1891년 레오 13세는 ‘노동헌장’으로도 불리는 회칙 ‘레룸 노바룸’(새로운 사태)을 반포했다. 이 회칙은 사회문제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견해를 최초로 밝힌, ‘가톨릭 사회교리’의 근원이 된 문헌이다. ‘노동자들의 상황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암시하듯이 회칙 주제는 ‘자본과 노동’이며 ‘새로운 사태’는 산업화로 본격화된 자본주의 체제하의 유럽 현실을 가리킨다. 당시 도시로 내몰렸던 가난한 농민들은 공장의 임금노동자가 돼 하루 16시간의 장시간 노동, 저임금, 각종 인권유린에 시달렸다. 극도로 불평등한 현실을 개탄한 레오 13세는 노동의 존엄성을 강조하며 자본가와 고용주에게 적절한 노동 시간과 정당한 임금, 노동조합 보장을 촉구했고 국가의 으뜸가는 의무를 분배 정의의 엄격하고 공정한 준수로 규정했다.

대선서 소외되는 차별 철폐 외침

21세기 전반 레오 14세가 마주한 세계는 19세기 말 레오 13세가 보았던 유럽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레오 13세는 ‘새로운 사태’를 “새로운 산업의 성장과 새로운 기술의 발전, 극소수의 막대한 부요와 대다수의 빈곤”으로 묘사했다.

오늘 우리는 반도체 산업과 인공지능 기술에 열광하는 세계에 살지만, 갈수록 불평등은 늘고 기후·생태 위기는 심각해진다. 신자유주의를 모범적으로 받아들인 우리나라 노동 현실은 더 심각하다. 2024년 8월 기준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38.2%에 달한다. 플랫폼, 특수고용, 프리랜서 등 불안정 노동이 빠르게 늘어났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노동자들은 공중에 올라가 ‘체공인’이 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 등 인권침해와 세계 곳곳에서 끊이질 않는 분쟁과 전쟁도 여전하다.

‘새로운 사태’는 자연에도 영향을 미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지구를 ‘공동의 집’이라고 불렀다. 모든 것이 긴밀히 연결된 공동의 집에서 번영은 함께하는 것이다. 자연도 사회와 함께 번영하고 함께 시든다.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대하니 자연도 속절없이 허물어진다. 우리는 19세기와 겉모습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새로운 사태’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대선의 시간이 되자 광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광장에서 함께 염원했던 ‘다시 만날 세계’를 위한 의제는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광장에서 외친 것은 성장과 인공지능이 아니라 평등과 차별 철폐다. 평등 세상에서 누릴 평화를 갈망했다. 하지만 대선이 닥치자 차별 없는 세상, 인권과 노동과 비인간 존재를 존중하는 세상에 대한 바람은 ‘나중에’로 떠밀리고 ‘지금은’ 성장과 기술이 먼저라는 기존의 거대 담론이 분위기를 지배한다.

압도적 승리로 정권이 바뀌면 세상도 바뀔까? 윤석열 이전부터 위기였던 이들의 삶은 안전해질까? ‘체공인’ 박정혜(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진수(세종호텔), 김형수(한화오션)는 공중에서 땅으로 내려올까? 자립적 삶을 갈망하는 장애인의 꿈은 이루어질까? 기후재난 최전선에 있는 농민의 삶은 나아질까? ‘밥 한 공기 쌀값 300원’은 보장될까? 최근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장기적 울분 상태’라는 우리 사회의 정신 건강은 나아질까? 모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기후·생태 위기는 조금이라도 완화될까? 21세기에도 기승을 떠는 ‘새로운 사태’는 구시대 유물이 될까?

그렇게 만든 승리가 세상 바꿀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을 함께 듣자고, “장벽이 아니라 다리를 세우라”고 호소했다. 레오 14세도 취임 일성으로 “다리를 건설하자”고 당부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장벽은 사람을 가르는 불평등과 차별이다. 불평등과 차별은 자연도 병들게 한다. 불평등 완화와 차별 철폐는 장벽을 부수고 다리를 놓는 일이다. 두 교황의 호소는 정권을 다투는 우리나라 거대 양당이 외면하는 광장의 의제를 소환한다. 권력이 눈에 아른댈수록 겨울 광장을 지키며 지금 대선의 시간을 만들어낸 이들의 염원을 기억해야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대통령의 권력 또한 쏜살같이 흘러간다. 부디, 겸손하라. 겸손해야만 시대의 절박한 사람들이 보인다. 그래야 다리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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