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3월 제33대 치협 회장단 선거가 끝나자마자 현 집행부 회장단과 경합을 벌였던 3명의 후보가 ‘부정선거척결연합’(이하 부척연)을 만들어 당선무효를 구하는 소송을 건지 2년여 만인 지난 6월 12일 1심 판결에서 집행부 회장단의 패소로 나왔다. 임기를 10여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이 판결로 인해 치과계는 새로운 국면에 빠져드는 양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부척연은 지난 6월 23일 이 1심 판결을 근거로 직무정지 가처분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현 집행부 회장단이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좀 성급하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먼저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이다. 물론 현 집행부 회장단도 뒤이어 항소장을 내긴 할테지만, 직무정지 가처분이 먼저 인용될 경우 협회는 식물 집행부가 되어 남은 임기 내내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될 위기에 처해있다.
물론 임원 중 한 명이 직무대리 역할을 잘 해 내겠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현재 치과계의 숙원 사업이나 정책들이 국가 사업과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시점에 직무대리의 직분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기에 협회의 기능과 역할을 마비시키거나 축소시킨다는 것은 치과계에 있어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부척연의 근시안적 대응이 아쉬운 이유다.
이러한 지적을 하는 것은 우선 법적으로 1심 재판에서의 패소가 완전한 패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1심에서 패소해도 항소심이나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바뀌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반대로 1심에서 승소했다고 해도 항소심이나 대법원에서 패소하는 경우도 수없이 보아왔다. 최종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1심 판결의 결과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제출된 준비서면을 봤거나 법정 진술을 필자가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또한 판사도 아니기에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3심제도를 두는 것은 올바른 판단으로 억울하게 처벌 받거나 지나치게 과다한 형량을 받는 일을 없애기 위함이라는 것은 상식으로 알고 있다.
더욱이 이번 재판에서 제기된 여러 당선무효 근거들은 각 재판부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판단 내릴 수 있으며 또한 미쳐 1심에서 따져보지 못한 문제로 인해 새로운 해석과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변수들이 있다. 설령 1심 재판과정에서 제기된 수많은 문제점들이 위법적인 요소가 있다고 해도 이것이 당선무효까지 갈 수 있는 사안인지, 아니면 단지 선거법 위반 정도에서 그치는 사안인지에 따라 당선무효까지는 아니라는 판결로 뒤바뀔 개연성도 있는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전설적인 뉴욕양키스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요기 베라(Yogi Berra)의 명언대로 “It ain’t over till it’s over”(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기에 아무리 혐의가 짙다고 해도 1심 판결만으로 곧바로 범법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3심을 통해 최종적으로 혐의가 인정되어야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필자가 누굴 지지해서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재판이 다 끝난 것도 아닌 상태에서 부척연이 1심 판결만을 가지고 직무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기에 좀 성급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부척연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지금 직무정지 가처분을 신청해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가졌어야 했다고 본다. 설령 추후에 가처분이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그 때는 항소심이 진행 중이기에 곧바로 당선무효가 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곧바로 선거를 치를 수도 없지 않은가.
당선무효 소송은 당사자가 중도에 포기하면 모를까 3심까지는 기다려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다음 선거까지는 끝날 수가 없다. 혹여 1심 판결만 가지고 부척연의 바람대로 협회 선출직 회장단이 자진해서 사임을 한다고 해도 차기 선거를 보궐선거로 치러야 할지, 완전 새로운 선거가 돼야 할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보궐선거로 하게 되면 정관상 협회장 임기가 1년 미만이기에 치룰 수 없다. 이럴 경우 가장 합리적인 것은 임원중에 한명이 대행하는 체제로 운영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당선무효이기에 새로운 선거로 해야 한다고 하나 이 또한 3심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문제지 이제 1심 판결만으로 결정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부척연 측에서는 임시총회를 열어 탄핵 등을 고려하려 한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항소심과 대법원 재판이 남아 있고 그 결과는 누구나 예측하기 어려운데 아직 선거무효 요건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탄핵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법정시비로 번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필자는 매우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거의 모든 갈등이 협회 내에서 해소되거나 마무리 되었는데 점점 갈수록 법원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기 때문이다. 감사는 왜 필요하고 총회는 왜 필요하며, 선거관리위원회는 왜 필요한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짚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참에 이 모든 조직들을 다 없애고 모든 문제를 법원의 판결로만 결정하는 것이 낫겠다 싶은 흰소리를 해본다.
이 시점에서 냉철하게 판단했으면 한다. 부척연 입장에서 보면 일단 1심이라도 승소했으니 직무정지 가처분으로 현 회장단을 압박하고 싶은 심정을 잘 알겠지만, 아직 항소심과 대법원이 남아 있는 시점에서 회무가 마비된다고 해서 부척연의 의도대로 협회의 상황이 정리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상황을 진행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10개월밖에 안남은 현 집행부의 임기를 단축시킨다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고, 단지 직무정지 가처분으로 식물집행부를 만드는 일밖에 없어 보인다. 따라서 재판은 끝까지 해봐야 할 문제이니 재판은 재판대로 진행해야 하지만, 일단 새 정부를 맞이하면서 치과계의 권익을 위해 뛰어야 할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치과계를 위한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 상황을 진행시켜 나가는 것이 그나마 3만여 회원들에 대한 도리는 아닌가 한다. 직무정지 가처분은 1심 판결난 현재로서는 바람직한 해답이 결코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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