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인문학] 실종된 전쟁문학, 질문이 사라진 문화

2025-06-17

'노을', '광장', '지리산', '태백산맥' 등 전쟁문학 잇는 작품 실종

질문이 없는, 그저 소비하는 문화는 씹다 버리는 추잉검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유월은 우리에게 어떤 계절일까. 저마다 답이 다르겠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유월은 한국전쟁의 계절이 아닐까? 올해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5주년이 됐다. 그 뜨거웠던 동족상잔의 전쟁에 동원됐던 청춘들은 이제 대부분 고인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쟁은 지금도 여전히 휴전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시대에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반성하는 문화적 행위들이 현저히 줄었다.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게 아닐까? 돌이켜보면 한국전쟁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게 된 건 교과서가 아니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읽었던 소설 속에서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배웠다.

'그의 눈에 비친 하늘은 분명 어둠을 맞는 핏빛 노을이 아니라 내일 아침을 기다리는 오색찬란한 무지갯빛이리라.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현구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고향도 반드시 어둠을 기다리는, 그런 상처 깊은 고향이기보다는 내일 아침을 예비하는 다시 오고 싶은 고향일 수도 있으리라.' - 김원일, '노을' 일부.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 있는 소설가 김원일의 문학비에 새겨진 장편소설 '노을'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소설은 해방 후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빚어진 남로당 폭동에 휘말린 아버지, 그 아버지로 인해 받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 김갑수의 이야기다. 주인공 김갑수는 중년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상처를 맞대면하면서 유년의 상처를 치유한다.

황순원의 장편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소설의 제목처럼 비탈에 선 인물들의 일그러진 삶을 그린다. 작중 주인공들은 모두 일그러진 삶을 사는데, 그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전쟁이다. 전쟁의 한가운데서 청춘을 보내야 했던 이들이 얼마나 파행적인 삶을 살았는지 작품을 통해 고발한다.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봤을 최인훈의 장편 '광장'은 어떤가? 한국 전후문학의 가장 탁월한 작품 중 하나인 '광장'은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대립, 한국전쟁과 조우한 인간의 고뇌, 사랑을 통한 구원과 좌절 등의 문제를 폭넓게 다룬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주인공 이명준이 남도 북도 아닌 제3국을 택해 떠나는 장면이다.

훗날 이병주의 '지리산', 조정래의 대하장편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우리는 한동안 금기어였던 빨치산의 존재를 알게 됐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빨치산은 여전히 동족이 아닌 폭도의 무리로 남아있을지 모른다. 문학이 우리의 편견을 바꾸는 데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 보여준 사례가 '태백산맥'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전쟁문학의 실종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남과 북으로 대치하여 살고 있는 현실을 애써 잊으려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학은 물론 영화나 드라마, 연극과 뮤지컬 등 어떤 장르도 불과 75년 전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우리가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 작품이 없다. 문학의 힘, 혹은 문화의 힘은 질문하는 데서 나온다. 질문이 없는, 그저 소비하는 문화는 추잉검일 뿐이다. oks3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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