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만 있고 '문서' 없는 한미정상회담…청구서만 남겼다

2025-08-28

정상회담 관례 깬 이례…풀어야 할 숙제 산적해 있다는 방증

버팀목 역할 한 한국기업…민주당 반기업 법안 폭주 멈춰야

우려와 불신이 교차하던 한미정상회담이 끝났다. 이례적으로 문서 없는 회담으로 마무리됐다. 공동합의문이나 공동선언문 없는 ’말‘로만 끝난 회담이었다. 급한 불은 껐지만 남은 불씨가 적지 않음을 예고한 것이다.

지금껏 보여 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은 무게감이 없다. 즉흥적이고 공격적이고 때로는 뒤집는다. 그렇기에 그의 말의 가벼움을 묶어 둘 구속력 있는 문서는 더욱 중요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성격과 가벼운 말 잔치는 예측불허다.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깊은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양국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통령실은 "합의문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얘기가 잘 됐다"고 했다. 해외 언론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칭찬 외교'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높이 샀다. 양국 첫 정상회담에 대해 대부분 첫 단추를 무난하게 끼웠다는 평가다.

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올린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는 글로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국회가 임명한 특검에 의해 사실조사 중"이라는 설명에 트럼프 대통령은 "오해라고 확신한다"고 밝혀 일단락됐다.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트럼프 특유의 기선잡기용 '거래의 기술'이라고 치부하기엔 찜찜하다. 어지러운 국내 정치 상황이 오해 아닌 오해를 불러일으킬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검찰과 경찰의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전방위적 '숙청'과 미군기지와 교회 압수수색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안보와 종교에 대한 수사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오해로 진화되긴 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사서는 안된다. 결과적으로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에 빌미를 제공한 점은 아프다. 아울러 한미정상회담의 총체적 평가에서 '성공적이었다'고 자위만 할 일도 아니다. 문서 한 장 없는 정상회담의 후폭풍을 대비해야 한다. 공감은 있었지만 구체적 합의가 없는 회담이었기에 날아올 청구서에 긴장해야 한다.

앞서 일본·인도·이탈리아 등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은 '미일동맹은 인·태 평화 주춧돌', 인도는 'AI인프라, 우주 등 33개 항목 협력 사항', 이탈리아는 '양국 전략동맹 강화, 우크라이나전 종식' 등을 공동성명으로 발표했다. "얘기가 잘 됐다"고 관례를 깰 수는 없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합의 내용은 더욱 문서로 남겨야 한다. 안보든 외교든 통상이든 회담장의 분위기와 말 한마디를 준거로 책임을 묻을 수는 없다. 공동성명이나 합의문으로 남기는 것은 구속력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신뢰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그의 말 한마디에 언제든 불확실성이 불거질 수 있다.

'말'로만 끝난 이번 정상회담의 속내를 들여다보며 넘어야 할 산과 풀어야 할 과제가 그만큼 산적해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한국은 기존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 외에 1500억 달러 추가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얻은 것이 없다. 주요 현안인 반도체·철강·자동차 관세와 원자력 협력 등에서 진전된 내용이 없다.

한미FTA를 무력화 시킨 자동차 관세에서도 답을 얻지 못했다. 일본이나 EU보다 2.5%포인트 낮은 12.5%를 기대했지만 무산됐다. 3500억 달러 투자펀드에 대해서도 이견이다. 정부는 대출이나 보증 위주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직접 투자를 요구한다. 잘못되면 원금을 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합의에 대해 "과거에 합의한 대로 거래를 마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쌀·소고기 등 농산물 시장개방이나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에는 양국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한미 동맹 현대화에는 공감했지만 주한미군의 역할 재조정에 대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되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기지 부지까지 요구하는 억지를 보탰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얻은 것이 없는 건 아니다. 외교·안보·경제 분야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한미 동맹 강화는 나름 성과다. 하지만 구속력 없는 약속이 어디까지 현실화될 지에 대한 불확실성은 상존한다. 진짜 협상은 지금부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 우리가 새겨야 할 경구다. 100에 하나가 모자라는 것은 99가 아니라 0이라는 것을. 1을 놓치면 하나가 모자라는 게 아니라 100 모두를 잃을 수 있다. 1이 99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대충 보면 쉬워 보이지만 제대로 해내려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개미구멍에 방죽 무너지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된다.

첫 걸음은 반기업법안의 폭주를 멈추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무난했던 한미정상회담의 든든한 버팀목은 기업이었다. 한·미 관세협상의 숨은 일등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마스가(MASGA) 프로젝트'였다. 이외에도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제조업 부활에 나선 미국에게 한국 기업은 최적의 파트너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가 "조선·제조업 르네상스를 함께 이루자"고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배경의 주인공은 한국기업이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은 경제사절단에 참여해 총력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이 있었기에 트럼프와의 거래가 가능했다.

국력의 핵심은 경제와 기업이다. 안보도 외교도 통상도 기업이 존재해야 가능하다. 한미정상회담이 또 한번 현실을 깨우치게 했다. 그럼에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기업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목을 옥죈다. 노란봉투법, 상법 등 온갖 규제로 역행하고 있다. 무역전쟁을 실감한 이 대통령이 결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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