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척하면 다쳐" 매일 새벽 5시30분 출근하는 83세 의사

2025-12-31

김호균(83) 영상의학과장은 매일 오전 5시 30분 국립경찰병원 진료실 문을 열고 전날 의뢰받은 영상을 판독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1건에 30분씩, 사소한 것이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들여다본다. 경찰병원 최고령 의사의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특별한 일과다. 이렇게 해서 그가 판독하는 영상은 하루 12건 가량이다.

지난해 12월 18일 오전에도 김 과장은 전산화단층촬영(CT) 영상을 앞에 두고 능숙하게 키보드를 두드려 판독 소견을 입력했다. 환자의 과거 초음파 검사 결과까지 차례로 살핀 뒤였다. 김 과장은 “간혈관종이 의심된다. 콩팥의 삼각형 모양 결손은 선천성일 가능성이 크고, 낭종은 양성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명료하고 또렷한 목소리였다.

김 과장은 인제대 서울백병원 부원장까지 지낸 의료계 원로다. 1945년 부친을 따라 월남한 뒤 60년 동안 의료 현장에서 고군분투했다. 그는 서울백병원이 지난 2023년 6월 경영난으로 문을 닫자 은퇴를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지인의 권유로 같은 해 10월 경찰병원에 지원했다. 김 과장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경찰과 소방관 곁에서 의료로 보탬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역 연장의 배경에는 전문임기제공무원 제도가 있다. 계약직 형태인 이 제도는 정년 제한이 없고, 의사 등에 대해선 하한액의 150%를 넘는 연봉 책정도 가능하다. 민간보다 처우가 낮아 의사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국공립병원들이 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경찰병원은 이 제도로 69명의 의사를 채용했다. 이 중 7명이 만 65세 이상이다. 한 국립병원 고위 관계자는 “진료와 전공의 교육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은퇴 교수는 귀한 자원”이라며 “국군수도병원과 국립나주병원도 이 제도로 명망 있는 교수를 여럿 채용했다”고 전했다.

김 과장의 의술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그가 판독을 꼼꼼히 빨리할 수록 다른 진료과가 치료 방향을 신속히 정할 수 있다. 경찰병원 관계자는 “김 과장 덕분에 환자 대기 시간이 줄고 진료 흐름이 한층 원활해졌다”고 했다.

김 과장은 “기억력과 지구력은 예전 같지 않다”며 자신을 낮추면서도 “알고 싶다는 의욕과 호기심만큼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엑스선(X-ray)만 존재하던 시절부터 CT와 자기공명영상(MRI), 최근 인공지능(AI) 기술까지 영상의학 현장의 변화를 모두 지켜본 의료계의 산 증인이다. 지금도 틈틈이 논문을 읽고 학회에 참석한다.

“모르는데 아는 척하면 환자 다쳐”

이제 그의 사명은 그간 쌓은 경험과 지혜를 너른 품으로 후학과 나누는 것이다. 김 과장은 얼마 전 한 학회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 실수를 모아 발표했다. 그는 “더 열심히 봤다면 발견할 수 있었던 병변을 놓쳐 후회와 자책을 한 적이 있었다”며 “후배들이 같은 실수로 환자를 불행하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경험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모르는데 아는 척하면 환자가 다친다”며 “확신이 서지 않으면 시간을 더 들여 공부하고, 환자 기록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계 후배들에게도 조심스럽게 당부했다. 그는 “돈을 너무 밝히면 좋은 의사가 되기 어렵다”며 “인간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을 도외시할 순 없지만, 돈에 치우쳐서 인술을 펼쳐야 하는 의사의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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