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통합판정과 간병수가, 제도 개혁의 핵심 요건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돌봄 통합판정체계’는 고령자 복지정책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노인의 건강 상태를 평가해 적정한 등급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이용 가능한 돌봄 서비스와 시설을 연계하겠다는 기본 방향은 타당하다. 하지만 제도가 현장의 실제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정책적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돌봄 공백을 확대할 수 있다.
이러한 우려는 요양병원이 수행하는 역할의 특성과 대비되며 더욱 두드러진다. 요양병원은 의료진이 상주하며 정기적인 진단과 처치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치매, 중풍, 고관절 골절, 당뇨합병증 등을 앓는 고령자는 단순 생활보조가 아닌 전문적인 의료 개입이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환자들이다. 반면 요양시설이나 재가서비스는 의료진이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 상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제도는 이러한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시범사업을 통해 통합판정을 경험한 입장에서 보면, 이 제도는 환자를 매일 직접 마주하며 치료와 간병을 병행하는 현장의 판단보다, 외부에서 일시적으로 방문한 모니터링 요원과 판정위원의 단편적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환자의 일상적인 의료 필요도나 돌봄 난이도는 정해진 평가 항목만으로는 완전히 드러나지 않으며, 이는 중증환자임에도 간병지원에서 제외되는 사례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장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판정 체계는 결과적으로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불합리한 결정을 강요하게 된다.
더욱이 통합판정의 결과는 단순히 등급 부여에 그치지 않고, 어떤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지, 본인부담금이 얼마인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다. 이로 인해 중증도가 높은 환자가 요양병원이 아닌 요양시설이나 가정에 머물게 되는 ‘서비스 미스매치’가 발생하 등 환자의 안전과 회복 가능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의료·간병 요구를 정량화된 점수만이 아닌, 의학적 판단과 현장 경험을 복합적으로 반영한 기준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통합판정체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표준화된 절차와 함께 환자를 직접 돌보는 현장 의료진의 정성적 판단이 제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요양병원이 회복재활 중심, 치매특화, 임종지원 등 각 기능에 맞는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려면, 간병수가의 신설과 기능별 차등 수가 체계 도입 등 구체적인 제도 정비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나아가, 요양병원이 지역사회 돌봄의 거점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재택의료와 방문진료의 제도적 허용이 필요하다. 입원 이후의 연속적인 건강관리 체계가 구축되어야만, 불필요한 재입원을 줄이고 고령자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명확한 법적 기준과 수가 보상도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요양병원은 회복과 돌봄, 이별과 존엄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이 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의 설계와 보상 체계 또한 환자의 현실과 의료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고령사회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그 틀이 삶의 현장을 정확히 담아낼 수 있도록 채우는 일이다.
안재용 <나은요양병원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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