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림에서) 보여줄 것입니다.”
사실적인 묘사와 빛과 어둠의 명암 대비가 특징인 바로크 시대, 17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남긴 말이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카라바조의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는 그에게는 남성이 지배하는 서양미술사에 최초로 이름을 올린 여성 화가이자 ‘최초의 여성주의 화가’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는 10대 때 아버지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런데 오히려 법정에서 육체적 고문과 부인과 검사까지 받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싸웠다. 그 뒤 카라바조와는 또 다른 자신만의 화풍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등 다수의 명작을 남겼다. 여성이 법적으로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물처럼 여겨졌던 당시 유럽에서 자신의 성폭력 사건에 맞서 어린 여성이 싸운다는 것은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의 그림이 오늘날 단순히 페미니즘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위대한 투쟁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지난달 23일 부산지법에서 10대 시절 성폭행을 시도하는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유죄를 선고받은 최말자(78)씨의 중상해 혐의 사건 재심 첫 공판이 열렸다. 이날 검찰이 심문 없이 곧장 무죄를 구형하는 것을 보면서 젠틸레스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최씨는 젠틸레스키와 비슷한 나이인 18세 때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당시 21세)씨의 혀를 깨물었다. 성폭행에 저항하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이 일로 최씨는 중상해 혐의가 적용됐다. 성폭행 피해자인 최씨가 가해자가 돼 수사를 받은 것이다. 검찰과 법원은 최씨의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1965년 최씨에겐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노씨는 강간미수가 아니라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죄만 적용돼 최씨보다 가벼운 징역 6개월의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성폭행을 당할 뻔했단 사실도, 그 과정에서의 저항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은 일도 최씨에겐 평생 상처로 남았다. 그러다 지난 2013년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에 입학, 2019년 졸업한 일을 계기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젠더폭력’ 등의 개념에 눈뜨며 부당한 판결을 뒤엎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다. 그 뒤 사건 발생 56년만인 2020년 5월 사건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내면서 이날 무죄 구형까지 나온 것이다.
최씨 사건은 형법 교과서에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이후 비슷한 판결에서 정당방위가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오는 9월 10일 선고에서도 최종 무죄 판결이 나면 앞으로 성폭행 사건에서 방어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또 한 명의 여성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