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러시아의 2차 대전 전승절 행사를 앞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자신감이 가득할 것 같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 군대를 파병해 기대 이상의 이득을 챙겼다. 김 위원장은 80주년 전승절 행사에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대신 보내고, 그 이후에 별도로 국빈 방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의 자신감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핵 보유의 자신감에선지 ‘남쪽 것들’을 상대로 강경 조치도 속속 내고 있다. 지난 2월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철거는 남과 북이 다른 민족이란 주장(‘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론’)을 확실히 보여주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통일부는 “반인도주의적 조치”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북, 우크라 파병 이득에 핵 자신감
‘핵 동결-제재 해제’ 스몰딜로
관광 등 개발에 미 끌어들일 수도

이제 아버지 김정일에게 물려받은 남쪽의 잔재를 김정은은 거의 다 치웠다. 금강산 관광지구와 갈마 해안관광지구를 연계해 관광 입국을 꿈꾸는 그는 남쪽이 세운 것을 그대로든 고치든 사용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김정은의 영도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 같다.
대북 제재로 자원·인력·무기 수출이 힘들어진 상황에서 주위의 반대에도 김정은은 갈마지구 등 관광을 돌파구로 여겼다. 관광시설에 자원을 투입하면 비용 대비 효과가 매우 크다고 판단했을 거다. 하지만 파리만 날리고 있다. 2019년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이후 중국이 관광객 수백만 명을 보내줄 듯했지만 함흥차사였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역병의 타격과 여파도 컸다. 김정은의 판단과 정책 실패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떠올리면 김정은은 입가에 미소를 절로 지을 것 같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생애 처음으로 참담함이 무엇인지 절감하게 한 ‘원쑤’였지만, 재등장한 트럼프가 다시 만나자며 보채는 형국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이 트럼프가 아니라 김정은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고 선전했는데, 주민들이 그걸 진실로 받아들이게 트럼프가 여건을 만들어주는 상황이다.
트럼프를 아직 만나지 않았는데도 김정은은 이기고 시작하는 형국이다. 핵 초강대국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 여러 번 언급했다. 국제적으로 공인되는 ‘핵무기 보유국(Nuclear Weapon State)’과는 의미가 다르지만, 북한 주민에겐 그게 그거다.
미국이 핵보유국으로 지칭하니 핵 폐기란 이젠 어림없고, 트럼프도 그걸 알 것이라 김정은은 생각할 것이다. 핵 동결과 대북 제재의 일부 해제를 주고받는 ‘스몰딜’로 트럼프는 치적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김정은은 느긋하게 트럼프가 가져올 선물 보따리만 살피면 된다.
트럼프가 대선 유세 중에 북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독특한 문화유산을 이용하는 관광과 해안 콘도 개발을 언급했을 때는 김정은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가자지구 관광개발 제안, 우크라이나 광물자원 협력을 지켜보며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거래 가능성을 주목했을 법하다. 적절한 스몰딜의 대가로 미국의 자본과 기업 진출을 통한 북한 관광 활성화와 지하자원 개발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트럼프가 지난 3월 14일 미국 국무부 글로벌미디어국(USAGM) 기능·인력을 최소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도 김정은을 즐겁게 할 사안이다. 탈북자들이 북한의 참담한 실태와 김씨 독재 정권의 치부를 폭로해 눈엣가시 같았던 글로벌미디어국 소속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대대적으로 축소된 것이다.
이래저래 김정은은 트럼프가 거래를 위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적당히 합의하고 적절히 추켜세우면 트럼프를 상대로 실리정책을 펼 수 있는 상황이다. 핵을 유지하고 제재를 풀고 미국 자본을 활용하는 ‘꿩 먹고 알 먹고’인 셈이다. 북·미 관계 정상화도 먼일이 아닐 수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을 둘러싼 트럼프-푸틴의 기 싸움이 잘만 끝나면, 푸틴의 힘을 활용해 트럼프와의 거래에서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시진핑 앞에 먼저 머리 숙인 예전의 김정은이 아님을 보여줄 수 있다. 김정은-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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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