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청률도 꽤 성공적인 10%였지만 최근 막을 내린 SBS 드라마 ‘귀궁’이 거둔 가장 큰 수확인 판타지 장르 이야기의 자산으로서 한국 무속신앙의 발견이었다.
윤성식 감독 연출로 윤수정 작가가 대본을 썼던 ‘귀궁’은 이무기 ‘강철’의 혼이 빙의한 주인공 윤갑과 무녀인 여리의 로맨스와 활극을 다룬 작품이었다.
주인공들의 매력과 로맨스, 코믹을 곁들인 액션 그리고 화려한 CG(컴퓨터그래픽)도 작품의 즐길 거리였지만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전설과 설화 등에 기반한 무속신앙의 모습과 이른바 ‘K-귀신’으로 불리는 각종 귀신들의 비주얼 그리고 그에 숨겨진 아픈 사연들이었다.
‘귀궁’은 이러한 이야기를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게 가공한 다음 윤색해, ‘K-무속신앙’ 역시 판타지 하나의 하위장르로 기능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야흐로 ‘K-귀신’으로 인한 한국만의 판타지 장르의 탄생이다.

이 작업의 주도적인 역할에 나선 윤성식 감독과 윤수정 작가가 ‘스포츠경향’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드라마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설명했다.
이하 윤 감독, 윤 작가와의 일문일답.
- ‘귀궁’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작: “공교롭게도 ‘왕의 얼굴’을 다시 언급하게 되는데 그 작품을 준비하며 읽었던 자료가 ‘귀궁’의 첫 시작이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왕이 도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내용이었는데, 그렇게 버림받은 경복궁이 모두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다는 내용이었지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버림받아 불에 타버린 궁의 이미지가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아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죽임 당한 사람들도 많았을 테고 황폐하게 변한 궐에 한 많은 귀신들이 많았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다 5년 전쯤 ‘어우야담’을 읽다가 조선시대 궐 안에 존재했다던 ‘팔척귀’에 대해 알게 되었고 오래 묵혀두었던 짤막한 아이디어, ‘궐 안의 한 많은 귀신’과 연결되어 그렇게 ‘귀궁’의 최대 빌런 팔척귀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팔척귀는 ‘국가로부터 사죄받아야 하는 모든 비극적인 죽음들’을 의미합니다. 그런 슬픈 죽음들은 먼 오래전 역사속에서도, 가까운 과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요. 국가를 상징하는 왕 이정은 팔척귀에게 당한 가장 큰 피해자이자 동시에 팔척귀를 탄생시킨 업보를 가진 가해자이고, 강철이는 이 모든 비극적인 굴레를 끊어내고 모두를 구해낼 구원자였으며, 여리는 왕과 팔척귀를 구원자 강철이와 연결해주는 매개자이자 이야기를 여닫을 화자였습니다.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인지라 대중적으로 다가서기 위해선 전략적으로 로맨스와 코미디, 미스터리, 액션 등의 당의정을 입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판타지 드라마라 많은 상상력이 필요했을 것이라 흔히들 생각하시던데요. 저는 무척 고지식한 사람인지라 자료의 근거가 없는 소재를 쓰는 것은 힘들더라고요. 강철이와 팔척귀, 비비(영노), 외다리귀, 야광귀는 물론 경귀석과 골담초(선비화) 같은 소품들까지 모두 설화와 야담 등에서 찾아내 캐릭터로 만들고 이야기로 엮어나간 것들입니다.

무속에 대한 공부는 민속학과 국문학, 인류학 관련 학술서와 논문들, 다큐멘터리 등을 참고하였습니다. 직접 무속인들을 만나 취재하는 것은 전체 이야기의 얼개를 만들어나가는 초기 기획 단계에서는 가급적 지양했는데요. 현대의 무당을 리얼하게 재현하는 것이 목표인 드라마도 아닌 데다가 무속의 관점에서 보면 몸주신과 제자의 사랑이라는 다소 황당한 부분이 있는 설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김금화 만신님의 제자분께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우리 무속에는 퇴마라는 것이 없다.’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얘기에 지금까지 공부했던 모든 것들이 한 궤로 쫙 꿰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더 분명해지는 것 같았어요. 편성이 결정된 후 회사에서 섭외해주신 무속자문팀께 이 부분을 한 번 더 여쭤보았는데, ‘조선엔 악귀가 없다.’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같은 맥락으로 저는 이해했는데, 즉 무속 세계 속 귀신들은 선악이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지 않고 원한귀만 존재한다는 것.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그 원한귀의 한을 달래주고 풀어주는 것이 무당의 몫이었던 것이지요. 좋든 싫든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해도 무속이 일반 백성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던 것을 생각할 때, 우리 선조들은 인간의 선한 의지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색다른 귀신들이었다고 평가해 주셨던 ‘귀궁’ 속 ‘K-귀신’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