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칼럼] ESG, 부활인가 위기인가:한국과 글로벌 시장의 교차점에서

2025-06-29

이재명 정부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본법 제정,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기후에너지부 신설 등의 ESG 의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윤석열 정부 시절 상대적으로 미온적이었던 ESG 정책 흐름과 대조적이다. 정부의 명확하고, 강력한 ESG 정책 방향이 정해졌음에도 아직 시장은 적극적인 ESG 추진을 주저하는 느낌이다. ESG의 역사적 흐름과 최근 국제분위기를 통해 그 이유와 해법을 찾아보자.

2020년, 전 세계는 ESG라는 단어에 열광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 유럽의 그린딜, 그리고 코로나19는 ESG를 기업 경영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ESG는 단순한 가치 기반을 넘어 '매출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며, 평판을 높이고 자금조달을 쉽게 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ESG는 도덕이 아닌 수익모델이었다. 그러나 이 열기는 2022년을 정점으로 점차 식기 시작했다. 초기 다수 기업들의 ESG 경영은 나무심기, 플로깅 등의 보여주기식 활동에 치중했고, 탄소중립 역시 선언적 구호에 머무는 등 ESG 경영 및 투자활동이 수익성과는 실질적인 연결고리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시장의 냉소였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ESG 펀드에서는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미국에서는 'ESG는 좌파의 정치적 도구'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정치화된 ESG에 대한 피로감마저 커져갔다. ESG가 규범적 가치로만 존재하고, 법제화와 회계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결국 말과 제도의 시차가 벌어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ESG에서 한 발 물러서고 있고, 유럽도 규제는 유지하되 시장은 다소 정체되어 있다. 국내 기업과 자본시장이 주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새 정부의 ESG 정책 방향은 분명 글로벌 흐름과 다소 차이가 있다. 한국이 국제 흐름 파악을 잘못하고 있나?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아래 두 가지다.

첫째, ESG의 본질적 가치가 변했거나 훼손된 것이 아니기에 올바른 방향이다. 지난 4일 지속가능금융 전문가인 뱅상 라투르는 “ESG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시 정의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ESG라는 단어가 사라져도, 그 정신은 위축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구조적이고 성과 중심적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둘째, 글로벌 ESG 흐름이 둔화된 틈을 기회로 삼고 있기에 속도와 수준은 오히려 높여야 한다. 혹자는 글로벌 ESG움직임이 멈췄으니 우리도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 얘기는 우리가 그들과 같은 선상에 있다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등산으로 비유하자면 미국과 유럽은 산 중턱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이고, 한국은 등산 초입에 서 있다. 같은 선상이 아니란 것이다. 이들이 다시 일어나 올라가기 전에 부지런히 격차를 좁혀야 한다.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이 기회에 그들을 앞질러 갈 수도 있다. 다시 올지 모를 정말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정책, 기술, 금융의 좋은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 ESG가 다시 시장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감정이나 가치가 아니라 데이터와 수익성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인공지능(AI) 기반 측정, ESG 회계 표준, 공시의무 제도화가 중요하다. 이스라엘 예루살렘경영대학의 케렌 바-하바 교수는 지난 18일자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AI가 ESG를 단순한 '숙제'에서 벗어나, 더 날카롭고 측정 가능하며 전략적인 가치로 전환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ESG는 이익과 전략적 결정의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며, 이를 실현하는 데 AI가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다행히 AI는 ESG와 새 정부의 공통 정책방향이다. 흔들림없이 나가기 위해서는 정치의 열정이 시장의 냉소를 이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열정이 제도와 수익으로 연결될 때, 우리는 비로소 ESG의 진짜 부활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ESG는 죽지 않았다. 다만 진화하고 있을 뿐이다.”

유인식 IBK기업은행 ESG경영부장·공학박사 yuinsik@ib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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