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뷔통, 젤라토 팝업 오픈’.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보게 된 외국 잡지 기사다. 초록색 간이매장 형태로 만들어진 루이뷔통 젤라테리아(젤라토 가게라는 뜻의 이탈리아어)가 9월 말까지 이탈리아 서북부 작은 해변 도시 포르테 데이 마르미(forte dei Marmi)라는 곳에서 영업한다는 내용이다. 트렌드를 다루는 해외 잡지 여러 곳에도 소개됐다. 루이뷔통이 일거수일투족 주목되는 최고의 명품회사이긴 하지만 작은 도시에 젤라토 팝업 하나 낸 것이 무슨 대단한 뉴스거리가 될까. 좀 더 찾아봤더니 이 도시에는 프라다가 운영하는, 외국 셀럽이나 인플루언서의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명물 ‘카페 프린시페’가 있다. 대리석이 많이 나는 곳이라 르네상스 시대부터 예술이 피어난 이곳은 예로부터 귀족들의 휴양지이자 지금도 유럽 부호들의 피서지라고 한다. 루이뷔통 젤라토를 두고 이탈리아 요리의 장인정신과 루이뷔통의 예술적 비전이 만난다느니, 젤라토를 통해 루이뷔통이 마련한 감각적 경험을 해보라느니 하는 장황한 설명과 해설이 붙은 것을 보니 맛이 궁금하긴 하다. 루이뷔통 키링 하나 살 형편은 안 되지만 젤라토 정도는 먹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명품 매장이건, 길거리 노점이건 간에 무더운 여름철 달콤하고 시원한 젤라토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사람들이 등장하는 풍경을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만드는 음식으로 젤라토만 한 것이 또 있을까. 폭넓은 스커트 차림에 젤라토를 먹으며 계단에 서 있다고 해서 오드리 헵번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낭만적인 상상에 마음껏 빠지는 건 누구에게나 허락된 자유다.
젤라토(gelato)는 이탈리아어로 ‘얼린’ 혹은 ‘아이스크림’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젤라토를 아이스크림이라고 불러도 될까. 넷플릭스 영화 <러브 앤 젤라토>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대학 진학을 앞둔 미국인 리나가 이탈리아에 여행 와서 만난 요리사 로렌초의 할머니 집을 방문한다. 로렌초가 “젤라토 좋아하냐”고 묻자 리나는 반색하며 “아이스크림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주방에 있던 할머니가 꽥 소리친다. “아이스크림? 미켈란젤로가 그림쟁이냐? 카라바조가 낙서쟁이야?”
엄밀히 말해 젤라토와 아이스크림은 다르다. 물성도, 문화적 의미도 차이가 있다. 젤라토와 아이스크림은 질감에서 그 차이가 느껴진다. 대체로 젤라토의 질감이 쫀쫀하고 쫀득한 편이다. 이는 공기 함량의 차이 때문이다. 전문 용어로 ‘오버런(overrun)’이라고 한다. 원재료에 공기가 혼합되면서 부피가 커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오버런 100%라고 하면 원재료와 비교했을 때 만들어진 결과물의 부피가 2배로 커졌음을 의미한다. 즉 ‘재료 반, 공기 반’인 셈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통상적인 아이스크림의 오버런 비율은 80~100% 정도다. 80% 이하이면 프리미엄급이다. 젤라토의 오버런은 20% 안팎 수준이다. 아이스크림과 비교했을 때 공기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훨씬 밀도가 높고 묵직하며 풍부한 식감을 갖는다. 원재료 본연의 맛도 강하고 직관적이다.
이탈리아에서 젤라토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여겨진다. 대를 이어 젤라토를 만드는 장인들은 지역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지난해 세계 최대 규모 젤라토 대회인 이탈리아 젤라토월드컵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2위를 차지한 젤라티에레(젤라토를 제조하는 사람·gelatiere) 유시연씨는 “도시의 골목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젤라테리아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 잡고 있다”면서 “이탈리아 전역에만 3만8000여개의 젤라테리아가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기를 이탈리아에서 보내고 젤라토의 코르동 블루라고 불리는 볼로냐 카르피지아니 젤라토 대학에서 공부한 그는 “젤라토가 아이스크림에 비해 밀도가 높긴 하지만 쫀득함의 정도로 품질이나 정체성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면서 “이탈리아에는 훨씬 부드럽고 다양한 질감의 젤라토가 많다”고 설명했다.

‘재료 반·공기 반’인
아이스크림보다
밀도 높아 쫀득한 맛
얼굴에 묻히고
길에 떨어뜨리고
영화나 드라마 속
‘고자극’ 키스신
연출에도 일등공신
젤라토와 아이스크림은 구분된다지만 넓은 의미에서 젤라토를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미국의 음식 저널리스트인 로라 와이스는 <아이스크림의 지구사>에서 젤라토를 ‘신성한 아이스크림’이라고 칭하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처음 탄생한 곳은 유럽, 그 가운데에서도 이탈리아였고… 아이스크림 제조 기술을 북아메리카 전역에 퍼뜨린 주인공은 이탈리아 출신의 이민자들이었다”고 썼다.
젤라토건 아이스크림이건 간에 이 차가운 물질은 무더위에 몽롱해진 정신을 깨우며 몸을 식혀준다. 동시에 달콤한 부드러움으로 신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생전 처음 이 맛을 본 사람이라면 이를 어떻게 표현할까.
“혀끝을 녹이는 맛이 애인의 키스도 비할 바가 못 되는 맛” “여름의 여왕, 애인의 키스보다 한층 더 그리운, 여름 하늘 더운 날, 아이스크림 맛”(매일신보 1930년 6월8일자. 주영하 ‘글로벌 푸드 한국사’에서) 글쓴이가 얼마나 자극적인 충격에 놀랐을지, 황홀한 맛에 감탄했을지 짐작된다. 식민지 조선에서 발간되던, 그 시절 신문에 이런 표현이 등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초적 본능을 일깨우는 맛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억나는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했던 아이스크림들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었다. 등장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담아낸, 예사롭지 않은 조연들이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장재열(조인성)과 지해수(공효진)가 늦은 밤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걷는 장면에선 내가 주인공이 되어 연애하는 듯 설렜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박준영(김민재)과 채송아(박은빈)가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린 뒤 서로를 바라보며 키스하기까지 얼마나 조마조마하며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영화 <노트북>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던 앨리(레이철 매캐덤스)가 노아(라이언 고슬링)의 얼굴에 아이스크림을 묻힌 뒤 키스하던 장면은 손발이 펴지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탕웨이)가 처연한 눈빛으로 아이스크림을 뜨던 숟가락을 입에 물고 있던 장면에선 왈칵 무장해제되고 말았다. ‘누가 해준(박해일)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겠어!’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말이다.
로맨스의 극치. 하지만 혈당을 올리는 설탕이며 액상과당이 죄악시되는 시대. 무더위를 떨쳐내는 데 차가운 물 한잔이 최고의 선택임을 누가 모르겠나. 그럼에도 우리는 안다. 매번 더위와 맞설 때마다 기꺼이 이 청순한 쾌락에 우리 몸을 내맡기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