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율신경실조증으로 치료받고 있는 환자 한 분이 대화 중 문득 "저는 말을 많이 하면 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이 지쳐요" 하였다. 사연인즉슨 그는 어린 시절부터 종갓집의 종손으로 각종 집안 행사에서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인사하며 잘 맞이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늘 받았다 내향적이고 말수가 적은 아이에게 처음에는 큰 압박이었지만 자라면서 내면화되어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아도 말하며 분위기를 좋게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그러다 보면 종종 소진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의 몸은 내원 때마다 자율신경 검사(Heart rate variability; 심박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비율이 10대 1 정도로 교감신경이 과 항진되어 있었다. 그에게 "항상 전투 모두에 있는 것과 같이 긴장되어 있어요. 비유하자면 초원에서 맹수에게 쫓기고 있는 상태와 비슷하지요. 계속되면 긴장 초조 불안한 느낌이 나고 잠도 잘 들기 어렵고 소화 대변 소변 등이 이상이 나타나기도 해요"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실제로 조금만 긴장해도 땀이 많이 났고 밤에 잠들기가 어렵고 여러번 깨고 종종 소화가 잘 안되었다.
그에게 자율신경과 장기능을 돕는 한약과 함께 이완호흡, 마음챙김을 안내했다. 치료가 진행될수록 100회가 넘었던 심박수가 80회 정도로 안정되고 잠들기 편해지고 탈모증상까지 호전되었는데 이러한 몸의 변화와 함께 밝은 목소리로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다. 예전에는 말을 할 때 침묵이 흐르면 불안감을 느끼고 계속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자동적으로 애써서 말을 했는데 요즘은 달라졌다고. 호흡연습을 많이 하다보니 사람들과 있을 때도 호흡에 마음을 두게 되었는데 말을 해야한다는 압박이 누그러지면서 쫓기듯이 말하기보다는 여유가 생겼고 침묵의 순간에 조금은 편안하게 되었다고 했다.
반가운 변화였다. 호흡으로 이완을 경험하다보니 흥미롭게 몸을 관찰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알아차림으로 이어진 경우였다. 어렸을때부터 학습되어온 ‘나는 ~이다. 나는 ~해야한다’는 생각들은 커가면서도 원치 않는 행동으로 이끌때가 있는데 마치 피부처럼 몸에 배어 자유로와지기가 쉽지 않다. 알아차림은 외부환경에 접촉할 때의 인식과 어린시절부터 우리몸에 배어 있는 자동반사적인 행동사이의 틈을 만든다. 거리를 두고 바라볼수 있게 되어 좀 더 효과적인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이러한 알아차림은 마음건강을 위한 현대의 심리기법에서 많이 응용되는데 종종 훈련이 필요하다. 명상, 요가, 태극권 등의 다양한 방법이 도움이 된다. 그중 UCLA의 정신의학과 임상교수인 다니엘 시겔의 ‘알아차림의 수레바퀴’ 과정이 흥미롭다. 그는 알아차림 과정을 수레바퀴에 비유한다. 수레의 중심축은 알아차림의 자리이다. 수레바퀴 살은 우리의 주의이다. 수레바퀴 테두리 부분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대상으로 오감, 신체내부감각. 정신활동. 연결감을 알아차리는 과정으로 훈련이 구성되어있다. 우리가 알아차릴 때 대상으로 주의가 나가면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형상화한다.
이 수레바퀴에 대한 비유는 또다른 비유가 연상된다. 수레가 움직이는 것을 흘러가는 삶에 비유해 보자면 수레가 운행되면서 바퀴가 닿는 면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듯이 알아차림의 대상은 외부의 조건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수레도 수레바퀴도 수레를 끄는 이도 영원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