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 ‘혼밥’ 노인

2025-06-08

한국인들에게 ‘혼밥’(혼자 먹는 밥)은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혼자 식당에 들어설라치면 혹시 아는 얼굴이 없는지 두리번거렸던 경험이 대부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혼밥은 사회성이 없거나 무리에서 소외된 ‘왕따’로 비치기 일쑤였다. ‘밥 먹었냐’고 묻는 게 인사말이기도 했던 한국 사회에서 밥을 함께 먹는 일은 그만큼 중요했다.

그러나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세상은 바뀌었고, 혼밥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흔히 일본을 혼밥족의 나라로 알고 있지만, 한국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 3월 발표된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인이 타인과 저녁 식사를 하는 횟수가 1주일 평균 1.6회였다. 주요 20개국(G20) 중 일본(1.8회)보다 적은 최하위권이다. 점심, 저녁을 합쳐도 4.3회에 불과하다. 중남미 국가 8.8회, 북미·호주·뉴질랜드와 서유럽이 각각 8.3회로 우리의 두 배다. 보고서는 다른 사람과 식사하는 빈도와 삶의 만족도는 연관관계가 깊다고 분석했다.

이런 결과는 행복지수가 낮은 한국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8일 학회지 한국노년학 최신호에 실린 연구논문 ‘노인의 소득과 우울에 관한 경로분석: 혼밥 여부의 매개효과’를 봐도, 혼밥 노인이 우울 수준이 높았다. 특히 저소득 노인일수록 혼자 식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적인 부담 탓에 함께 밥 먹는 자리를 꺼려서라고 한다.

물론 요즘 혼밥은 옛날처럼 눈치 보며 먹는 쓸쓸한 밥은 아니다. 시선을 집중할 스마트폰이 있으니 남 눈치 보며 숟가락을 떠야 하는 겸연쩍음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혼밥이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국 지자체에서 혼밥하는 저소득 노인들에게 도시락이나 반찬을 배달해주고 있지만, 사회적 관계 형성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런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돈이 많건 적건 나이 들수록 피해야 할 것이 고립이다.

외로움 담당 장관이 있는 영국의 옥스퍼드대 학생 식당에는 수십명이 밥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고 한다. 다들 알다시피 밥은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 혼밥 인구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누군가와 어울려 밥을 먹을 수 있는 넓은 식탁을 마련하는 일이 우리 사회가 받아든 또 하나의 숙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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