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기획위원회의 정부 조직 개편안 발표가 8월 말 한미 정상회담 이후로 밀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32년 만에 에너지 정책을 산업 정책에서 떼어내는 문제부터 금융 감독 체계 개편을 둘러싼 위헌 논란 등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서다. 여당 우위의 국회 구도상 정부조직법 통과가 어렵지도 않아 조급하게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현실적 계산 역시 깔려 있다.
10일 정치권과 관가에 따르면 국정위가 13일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공개할 123개 국정 과제에 정부 조직 개편안이 제외되거나 방향성만 간략하게 언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위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조직 개편의 큰 그림은 그려졌지만 한미 무역 협상 후속 조치, 예산안 편성 등 경제 현안이 쌓여 있어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실에서 속도 조절 신호를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국정위가 추진 중인 정부 조직 개편안은 부처 간 줄다리기가 치열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조직을 단순히 쪼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업무와 권한 재조정, 부처 신설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25일 개최될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관세 협상의 세부 내용 확정 △미국 농산물 추가 수입 여부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계획 발표 등이 예정돼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국방비 증액, 주한미군의 역할 조정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주요 의제들이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정부조직법이 구체적으로 공개될 경우 찬반 양론으로 나뉘며 정상회담 준비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다.
당장 기후에너지부 신설부터 문제다. 국정위는 ‘기후에너지부’ 신설안과 ‘기후에너지환경부’로의 개편안을 놓고 막바지 조율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어느 쪽이든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기능은 다른 부처로 넘어간다. 에너지 정책이 산업 정책과 분리된다면 1993년 상공부와 동력자원부가 합쳐진 후 32년 만이다. 정부 내에서는 미국 중심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에너지 정책을 산업·통상과 분리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 감독 체계 개편 역시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국정위는 최근 금융위원회의 감독 기능을 금융감독원과 합쳐 금융감독위원회로 개편하는 내용을 담은 조직 개편안을 대통령실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이 이대로 조직 개편을 확정지으면 금융위는 사실상 해체된다.
문제는 금융 감독 권한을 민간 기구에 부여하는 것이 헌법과 정부조직법에 부합하는지 여부다. 2017년 법제처는 금융기관 제재·인허가 등은 국민 권리·의무에 직결되는 행정 권한이어서 민간 이관 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봤다. 현실적으로는 금융정책을 신속하게 집행하기 어렵고 금융사 입장에서는 중복 규제와 검사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격상하는 안 역시 정책과 감독 기능이 분리되면 신속한 대처가 어렵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하는 방안은 공약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2008년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통합돼 기재부가 생긴 뒤로 17년 만에 기획예산처가 재탄생하는 셈이다. 공공 정책 기능도 기재부에서 분리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기재부의 이름 또한 재정경제부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