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Pacific Crest Trail·미국 서부 종단 트레킹). 태평양 연안을 따라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무려 4300㎞나 이어진 장대한 길로, 전 세계 걷기 여행자들에겐 오매불망 도전을 갈망하는 꿈의 길이다. 5~6개월간 사막·고산 기후 등 극한의 날씨를 견디면서 길 위에서 먹고 자는 고행을 이겨내야 비로소 종착지가 보인다. 1년에 8000명 정도가 도전하지만 약 20%만이 성공하고, 일부 도전자는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완보의 영광’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이 고행의 길을 <농민신문> 자매지 월간 <전원생활>에 몸담았던 신시내 기자가 도전에 나섰다. 신기자의 PCT 무사 완보를 응원하며, <농민신문>이 그의 종단기를 독점 연재한다.
국경 앞에 서서
2025년 4월 19일.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앞, PCT(Pacific Crest Trail) 남쪽 시작점에 섰다. 아담한 세 개의 기둥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이 곳은 ‘PCT 서던 터미너스(PCT Southern Terminus)’라고 불린다.
‘내가, 이 앞에 오다니’ 5개월에 걸친 긴 여정을 드디어 떠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 팟캐스트를 통해 2022년 11월 처음으로 PCT의 존재를 알게된 순간, 2023년 10월 PCT 일부 구간을 10일에 걸쳐 걷고 막 인천공항에 도착한 남편이 “우리 같이 가자, 가서 전 코스를 걷고오자!”라고 흥분으로 가득한 권유를 했던 날,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미국 비자 심사를 받기 위해 긴장하며 대사관 앞에서 종종거렸던 한 겨울의 새벽공기까지 이전의 많은 시간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런 복잡한 머릿속과는 달리 눈에 보이는 풍경은 너른 평원에 사람이라고는 안내를 위해 출장 나와 있는 PCT협회 직원과 나와 남편뿐이었다. 앞으로의 여정이 어느정도 짐작이 갔다. ‘이런 대자연을 대부분 단둘이 걷게 되겠구나’라고 말이다.
PCT는 미국의 3대 트레일로 불리며 태평양 연안에 인접한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 3개주의 산악지대를 약 4300km라는 긴 코스로 이어 5~6개월간 도보 또는 말을 타고 종단할 수 있도록 만든 코스다. 1930년대 만들어지기 시작해 현재는 국가에서 이 트레일을 적극적으로 관리·운영하고 있다.

PCT 협회를 통해 퍼밋(Permit)을 받은 사람만이 이 코스를 걸을 수 있는데 1년에 약 8000명 정도가 종단에 도전하고, 이 중 완주는 보통 20%만이 성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은 1년에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20명 정도가 도전한다. 놀라운 점은 대부분의 한국인이 도전에 성공한다고 하니 내 어깨도 자연스레 무거워진다.
이 여행을 떠난다고 알렸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물은 것은 역시나 ‘왜’다.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왜 이 길을 걷는 걸까’ 25년째 백패킹에 매진하는 남편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와 목적, 완주를 향한 확신을 가지고 온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걷는 이 시간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는 앞으로 마주해야 할 숙제인 셈이다.


지금은 출발 이후 고작 한달 내외를 걸었지만,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활한 자연, 이색적인 동식물, 고된 길을 함께 걷는 PCT 하이커들 간의 연대, 하이커를 위해 시간과 돈을 기꺼이 내어주는 트레일 엔젤(Trail Angel) 등 이곳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의 마음을 점차 열어주고 있다. 그래서 꼭 무언가 얻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런 흔치 않은 경험을 <농민신문>을 통해 ‘GO GO! 사표 쓰고 미국 종단’이라는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다니 참으로 고마운 기회다. 이 글을 통해 다양한 스루하이킹(Thru hiking, 긴 거리의 트레일을 연속된 여정으로 완주하는 하이킹), PCT, 미국 문화 등을 소개하며 독자들과 이 험난한 여정을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