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대규모 월패드 해킹 사고 후 공동주택 세대별 망분리가 의무화됐지만 보안통신 규격이 표준화되지 않아 가상사설통신망(VPN) 업체가 제각기 다른 방식을 적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월패드와 단지서버 간 상호호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망분리 방식의 호환성 이슈까지 겹쳐 소비자 피해가 불가피하다.
17일 본지 취재 결과 정부의 공동주택 세대 간 네트워크 분리(망분리) 의무화가 적용된 첫 단지들이 올 연말 입주를 앞둔 가운데 VPN업체가 각자 다른 방식을 취해 상호연동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 보안통신 규격이 있지만 정부가 적용을 의무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공동주택의 지능형 홈네트워크는 월패드-단지서버-외부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간 상호호환성이 준수되지 않는 고질적 문제를 겪고 있다. KS표준이 있지만 홈네트워크 업체들이 준수하지 않고 있고,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도 사실상 문제를 방치해왔다. (※본지 6월 12일자 2면, 7월 24일자 1면 참조)
여기에 망분리 의무화까지 더해지면서 가뜩이나 호환되지 않는 월패드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월패드와 단지서버 중간에 위치한 보안 통신규격이 호환성을 갖추지 못하면 추후 해당 시스템 교체 시 동일 보안업체만 써야 한다.
이는 추후 유지보수 계약에서 사용자가 불리한 비용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해당 업체가 영업을 중단하거나 사업에서 손을 뗄 경우 전체 시스템 교체가 불가피하다.
지금도 호환 문제로 인해 특정 월패드 브랜드의 고가 모델을 억지로 구매하거나 월패드와 시스템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 구조가 보안 시스템에서도 반복돼 사용자가 피해를 본다.
'지능형 홈네트워크 설비설치 및 기술기준' 고시는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토교통부가 공동 담당한다. 과기정통부가 홈네트워크 보안, 산업부가 월패드 기업의 KS표준 이행 관리·감독, 국토부가 고시 준수 이행 여부를 맡았다.
업계 관계자는 “3개 부처 공통 고시여서 결과적으로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 수년간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지적됐지만 사용자가 불필요한 부담을 져야 하는 구조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AI스마트홈협회 관계자는 “특정 보안기업의 기술 종속을 막고 호환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 보안통신 규격(ISO/IEC EST RFC7030) 준용을 정부에 제안한 상태”라고 말했다.
남우기 한국정보통신기술사회 회장은 “망분리를 적용한 신규 입주 단지를 사전 점검한 결과 여러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첫 설계 단계부터 호환성 확보를 검증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