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과의 전쟁

2025-08-28

“서울중앙지검 김민석 검사입니다. 박성주님 명의 통장이 범죄에 이용된 사실이 확인돼서 연락드린 겁니다.”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취임식 도중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계좌가 범죄에 이용돼 지급정지된다는 내용이다. 실제는 아니다. 경찰청이 28일 공개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예방 홍보를 위한 영상에 박 본부장이 출연해 전화를 받는 상황을 연출했다. 범행 대상이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취지다.

알면서도 당하는 게 보이스피싱이다. “왜 속느냐”고 하겠지만, 적잖은 이가 범죄조직의 협박에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시키는 대로 안 하면 구속된다고 을러대는 통에 송금하고야 만다. 수법은 더 정교해졌다. 2000년대 중후반엔 ‘가족을 납치했다’거나 교통사고 합의금 등 현금을 유도하는 범죄가 많았다. 그러다가 기관 사칭으로 진화했다. 이들의 태연한 연기에 전문직 종사자들과 디지털에 익숙한 청년들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보이스피싱은 전 세계적인 골칫거리다. 일본에서는 고령자에게 전화를 걸어 “오레오레(おれおれ·나야 나)”라며 돈을 보내라고 한 사건이 많아 ‘오레오레 사기 사건’으로도 불린다. 지난해 영국에선 보이스피싱범의 진을 빼 범죄를 예방하는 할머니 AI ‘데이지’가 화제가 됐다. 오죽하면 이런 방법까지 생각했을까 싶다.

디지털 문화가 발달한 한국은 보이스피싱 범죄의 주요 표적이다. 그만큼 피해 규모도 크다. 지난해 피해 건수는 2만800건, 피해액은 8545억원이다. 이날 정부와 경찰은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전화번호는 신고 10분 내로 차단하고, 전담 수사조직에서 전국 동시 수사를 하겠다고 한다. 새로 출시되는 휴대전화에는 보이스피싱 탐지 기능을 탑재하고, 금융사에도 피해액 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긴밀히 협력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겠지만, 모든 사기를 막을 순 없다.

보이스피싱은 이제 첨단 범죄가 됐다. 최근엔 AI를 활용한 딥보이스 기술로 가족까지 속인다. 가족 간 암호를 정해두어도 다른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사건을 방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나는 괜찮다”는 과신은 금물, 일단 모르는 전화는 경각심을 갖는 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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