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 우선주가 지난 15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상장 폐지됐다. 상장 유지를 위한 유통 주식 수 요건인 20만주에 967주가 부족했던 것이 사유다. 한화가 자사주를 장외에서 매입해 전량 소각하면서 유통주식 수는 19만9033주에 그쳤다. 한화는 절차 상 문제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관련 내용을 공시해왔고, 사전에 공시된 내용에 따라 투명하게 진행돼 상장폐지는 계획된 수순이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은 이 과정을 '정해진 수순'으로 보고 있었다. 특히 자사주 소각 수량이 상장폐지 요건을 정확히 맞춘 듯한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자사주 소각으로 상장폐지를 유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소각 이전부터 유통 물량이 임계점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상장폐지 가능성은 사전에 예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화 측이 주주와의 소통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소각을 진행했다는 지적이다. 일부 주주는 대통령실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보통주 전환권 부여 및 공개매수 재추진 등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한화의 이번 결정이 절차적 요건 충족을 넘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의 취지와 배치된다는 점에 있다. 지난 15일 국무 회의에서 의결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고,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명문화해 소액주주의 경영 견제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한 투자 주체에 그쳤던 소액주주를 기업 경영의 감시자이자 책임 요구의 주체로 격상시킨 제도적 변화다.
이에 소액주주의 대응도 이전보다 달라졌다. 주주들은 '주주가치 훼손'을 사유로 법적 수단은 물론, 탄원과 공론화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주총회와 이사회에 대한 감시 수준도 높아지고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증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한화 우선주 상장폐지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역행한다. 자사주 소각 이후 유통 주식 수가 기준 이하로 감소했지만 상장폐지로 이어진 결과에 대해 경영진이 주주들과의 소통을 충분히 진행하지 않은 점에서 절차적 정당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평가다. 상장폐지는 단일 종목의 퇴출을 넘어, 기업과 주주 간 신뢰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특히 유통 물량 부족이라는 이유가 사전에 조정 가능한 문제였다는 점에서 주주 설득이 없이 '정당한 절차'를 따랐다는 해명이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법적 요건을 충족했다고 해서 신뢰까지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자본시장은 단순한 규정보다 더 높은 수준의 책임과 소통을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투명한 결정 과정과 주주와의 진정성 있는 대화 그리고 권익 보호를 위한 실질적 조치가 동반돼야 한다. 절차보다 신뢰가 기업 가치를 결정짓는 것을 기업 스스로 인식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