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들의 패션은 예전부터 ‘조용한 럭셔리’ ‘올드머니룩’이라는 용어로 설명되며 관심을 받아왔다. 그들의 옷은 고가의 브랜드에다 쉽게 구매하기 어려운 것으로 ‘그들이 사는 세상과 일반인이 사는 세상’을 나누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재벌로 그들이 입는 옷이나 착용하는 아이템이 그들에게 고가는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냥 외출했을 뿐인데 그들의 착장을 기사화해주는 기자와 블로거들로 인해 패션 계급이 형성된다.
이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임세령 대상홀딩스 부회장의 아들인 이지호씨의 해군 장교 임관식에서도 임세령 부회장의 패션은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그리고 임상민 대상그룹 부사장의 패션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왜 임세령 부회장만 화제가 되었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임세령 부회장의 패션 완성도로 인해 많은 사람의 구매욕을 불러일으킨 점 그리고 선글라스의 가격이 ‘한 번 비벼볼 만한’ 금액대였다는 점이다.
임세령 부회장은 그동안 배우 이정재와의 외출 혹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재벌가에서 보기 어려운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재벌가 특유의 고급스러움, 절제미에서 벗어나 캐주얼한 스포티룩을 선보이기도 하고, 2022년 에미상 시상식에서는 개성과 화려함이 돋보이는 홀터넥 드레스와 금빛 진주 장식 초커를 소화하기도 해서 단순히 재벌이라는 인식보다는 패션 센스를 갖춘 셀럽의 이미지도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의 착용템이 소위 ‘명품’이라서 관심을 가진 것도 있지만, 그의 소화력이 웬만한 모델보다 훌륭해서인 것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 아들의 임관식에서 착용한 A라인 실루엣의 롱코트와 이너로 착용한 실크(로 보이는) 블라우스 그리고 선글라스로 우아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우아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선의 부드러움, 여유 그리고 심플함이다. 임세령 부회장의 웨이브가 들어간 긴 머리 스타일과 A라인으로 떨어지는 코트의 실루엣 그리고 목 부분과 손목에 살짝 보이는 실크 블라우스의 소재가 우아함을 배가했다. 당신도 우아해지고 싶다면 부드러운 선, 즉 실루엣을 잘 활용하면 된다.
카리스마를 표현한다는 것은 편해 보이는 것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어렵게 느껴질수록 카리스마를 강화한다. 그렇다면 임세령 부회장의 모습에서 ‘어려움’을 담당하고 있는 착용템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선글라스와 검은색 의상이다. 검은색은 무게감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색이다. 누군가에게 얕보이고 싶지 않다면, 그 사람을 만날 때는 검은색 옷을 입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선글라스는 눈을 가리기 위해 착용한다.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려는 방법도 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표정과 감정을 읽지 못하게 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임세령 부회장은 아들의 임관식에 참석하면서도 삼성가와 같은 자리에 온다는 것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의 임관을 축하하고 싶지만, 많은 기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 분명하므로 자신의 표정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이재용 회장과 홍라희 여사가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 참석한 것과 대조적이다.
기사나 영상을 찾아보면 실제로 임세령 부회장은 아들을 보기 전까지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다 아들과 만나서야 활짝 웃는다. 대상홀딩스 부회장에서 어머니로 순간 전환되는 모습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벌의 패션은 늘 화제가 된다. 그건 그들이 착용하는 고가의 아이템에 집중하며 거기에만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이다. 임세령이 아니었어도 선글라스가 그렇게 화제가 되었을까? 그 코트가, 그 가방이 그렇게 화제가 되었을까? 삼성가 사람들 뒤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임세령 부회장도 한 명의 엄마라는 것을, 짧았던 아들과의 만남을 아쉬워하는 표정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임세령이 착용했던 선글라스가 품절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그의 우아한 카리스마가 소비의 대상으로만 비춰져 조금 쓸쓸하게 느껴졌다.
■이문연

작가 옷 경영 코치. 건강한 스타일과 옷 생활을 위한 개인 코칭을 진행하며 글도 쓴다. <주말엔 옷장 정리> <문제는 옷습관> <불혹, 옷에 지배받지 않고 나를 표현하는 법>을 썼다. 인스타그램 @ansyd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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