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문제를 덮어주면 평생 은혜를 갚겠습니다.”
“저는 덮는 거 싫어해 이불도 안 덮고 잡니다.”
2021년 5월 성남시 백현동 ‘옹벽아파트’ 인허가 특혜 의혹을 취재하던 중앙일보 모 기자는 이 아파트 시행사 회장의 회유를 단칼에 거절했다. 부동산업계를 꿰고 있는 이 기자는 백현동 아파트의 비리 의혹과 안전문제를 연이어 단독 보도했다. 그 뒤 검찰 수사와 기소, 법원의 재판이 이어졌다. 3년을 넘게 끈 법정 공방 끝에 백현동 옹벽아파트 비리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다.
법원, 토건 비리 세력에 유죄 확정
민주, 대법원 ‘내란세력’ 몰아 협박
사법부 장악 노린 입법 폭력 그만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28일 시행사 회장으로부터 거액을 받고 인허가 로비를 한 혐의로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에게 징역 5년과 추징금 63억5700만원을 선고했다. 김 전 대표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성남시장에 출마했을 당시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을 정도로 이 후보와 각별한 사이였다. 그는 이 후보의 최측근인 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실장을 통해 인허가 로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대표의 로비는 한국 부동산 시행사업 역사상 최고의 ‘대박’을 터뜨렸다. 한국식품연구원이 있던 자연녹지를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나 높여 316%의 용적률을 받아냈다. 평지에 지은 잠실 일대 신축아파트의 용적률이 270%대인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특혜다. 더 큰 문제는 용적률을 높이다 보니 산을 깎아 높이 최고 51m, 길이 300m의 거대한 옹벽을 쌓았다는 것이다. 이는 산림청의 제한규정(15m)을 세 배 이상 넘는 것으로,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성남시 건축위원회에서 뜨거운 격론이 벌어졌다. 이 지역의 토질이 산사태에 취약한 단층파쇄대여서 수직에 가까운 옹벽을 설치할 경우 붕괴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성남시 공무원 중에도 옹벽의 위험성을 들어 허가를 반대한 사람이 있었다. 토목공학 박사인 그는 쓰레기 분리수거장으로 좌천됐다 해고됐다. 하지만 옹벽 허가는 5차까지 열린 건축위원회 회의에서 14명의 위원 중 찬성 9명, 기권 5명으로 통과됐다. 그 뒤 인허가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이 시장이 백현동 개발계획안에 최종 사인을 했다.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다는 이재명 후보의 허위사실 공표죄 파기환송심은 대선 뒤로 미뤄졌다. 민주당은 이 후보에게 유죄를 선고한 대법관들을 ‘내란세력’으로 몰고 있다. 마치 왕에게 반역한 대역죄인을 다루듯 청문회, 탄핵, 특검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겁박하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엔 정치권력이 사법부를 장악했다. 1980년 김재규 내란목적 살인사건 재판은 당시 권력 실세인 전두환의 신군부에 사법부가 능욕을 당한 사례다. 김재규 1심 재판은 17일, 항소심은 단 7일 만에 끝났다. 하지만 대법원에선 격론이 벌어졌다. ‘내란 목적’을 빼야 한다는 소수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신군부는 소수의견을 낸 6명의 대법관에게 사표를 강요했다. 사표를 거부한 양병호 대법관은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받고 결국 사표를 썼다. 신군부의 대법원 길들이기는 특효를 발휘했다. 1981년 1월 23일 대법원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서 만장일치로 사형을 확정했다.
지금 민주당의 선을 넘는 행태는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전두환 신군부의 대법원 협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백현동 옹벽아파트 사건은 정치 문제가 아니다. 주민의 안전까지 무시하면서 업자에게 천문학적인 특혜를 준 전형적인 토건 비리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 과정에서 다시 한번 이 사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민주당은 사법부 협박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
대통령 혹은 국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다수당이라도 재판에 관여하거나 영향력을 미쳐선 안 된다. 이는 법치국가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철칙이다. 이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면 그 나라는 법치국가라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