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관세전쟁 직격탄 맞은 글로벌 명품업계 ‘쇼크’ [세계는 지금]

2025-05-03

차갑게 식은 시장 전망도 어두워

호시절 2년 만에 막 내려

코로나 이후 ‘보복소비’ 열풍으로 환호

최근 경기 둔화로 기업 실적 ‘곤두박질’

中 지갑 닫자 소비자층 5000만 명 감소

LVMH·프라다·구찌 등 주가 20% 하락

명품 NO… 실속소비 뜬다

명품기업 노동착취적 생산 문제 재조명

“원가의 수십배 폭리” SNS 폭로 잇따라

MZ세대 중심 복제품 구매 ‘듀프’ 열풍도

“경기 좋아져도 명품 매출 회복 어려울 것”

“욕망이 혁신을 이겼다.”

2023년 글로벌 명품업계 ‘거두’로 꼽히는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회장이 포브스와 블룸버그에서 선정하는 ‘백만장자 순위’에서 1위에 오르자 세계 곳곳에서 나온 반응이다.

인공지능(AI)이 만들 혁신의 기대감에 힘입어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때였음에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등을 제치고 명품업계 인사가 세계 최고 갑부 자리를 차지한 것에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불어닥친 ‘보복소비’ 열풍을 등에 업고 명품업계의 기세가 뜨겁게 달아오른 덕분이었다.

그러나, 아직 열기가 살아 있는 IT 업계와 달리 명품업계의 상승세는 불과 2년여 만에 차갑게 식었다. 글로벌 경기 둔화 등으로 명품 경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기업들의 실적 둔화가 이어지고, 주가 역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백만장자 순위’에서 아르노 회장의 순위 역시 블룸버그 기준 7위까지 내려앉았다. 설상가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명품의 실상이 속속 드러나고,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의 소비문화가 변화하며 미래 전망까지 어두워졌다.

“좋은 시절이 끝났다.”

명품업계의 최근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경기침체, 관세에 직격타… 줄줄이 주가 폭락

명품업계의 하락세는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가 지난해 12월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개인명품시장 규모는 3630억유로(약 538조원)로 집계돼 2023년의 3690억유로에 비해 2% 감소했다. 의류와 가방, 보석, 화장품 등 개인 명품에 대한 수요 둔화는 코로나19 봉쇄 기간을 제외하면 15년 만에 처음으로 나타는 현상이다. 지속적으로 이어지던 성장 흐름이 꺾인 것이다.

최대 명품 소비지인 중국을 덮친 불황이 직격타가 됐다. 중국 소비자들이 내수 부진에 결국은 지갑을 닫으며 지난해 글로벌 명품기업들의 중국 내 매출 감소율은 20%를 넘나든 것으로 추산된다. 베인앤드컴퍼니는 “중국의 빠른 경기 둔화와 함께 한국의 어려운 상황도 명품업계 매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명품을 소비하는 소비자군 규모 자체도 줄었다. 베인앤드컴퍼니의 페데리카 레바토 파트너는 “총 4억명에 달하던 명품 소비자층이 지난 2년간 5000만명 감소했다”고 추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관세전쟁은 이미 하락세를 겪고 있는 명품업계에 또 하나의 ‘결정타’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은 지난 3월 글로벌 명품기업들의 매출이 올해에도 2%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번스타인의 분석가 루카 솔카는 “변덕스러운 정책 발표로 인해 금융 시장과 경제에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명품기업들에게 매우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했다. 이미 LVMH는 패션 및 가죽 제품 부문의 매출이 1분기에만 4% 감소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1분기 매출이 25%나 감소했다.

관세전쟁이 보다 거세질 경우 명품업계의 피해가 더욱 커질 건 분명하다. 명품 제조기업 생산기지의 상당수가 중국, 베트남 등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전쟁의 타깃으로 삼는 지역에 위치해 관세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 등 유럽 현지에서 만들어지는 제품 역시 관세 충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1일 중국을 제외한 주요 교역상대국에 기본관세 10%를 제외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했지만, 자동차, 전자제품 등과 달리 명품은 생활필수품이 아닌 터라 유예기간 이후에는 다시 관세가 적용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명품업계에 드리운 어둠은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중이다. 주요 글로벌 명품기업들의 주가가 올해 들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LVMH의 경우 연초 이후 주가가 4월28일 기준 20.99%나 하락했고, 구찌를 보유한 케링그룹의 주가는 25.87%, 디올은 21.56%나 내려앉았다.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프라다 역시 연초 이후 주가 하락률이 22.10%에 달한다. 까르띠에를 보유한 스위스의 리치몬트그룹과 에르메스 등은 연초를 기준으로 하면 주가가 상승했지만, ‘대목’인 밸런타인데이 이후 최고가에서 하락률을 따져보면 역시 15∼20% 가까이 주가가 빠지며 하락세가 본격화됐다. 샤넬 패션 담당 사장인 브루노 파블로프스키는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주식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면 우리 매장들의 사업 수준을 예측할 수 있다”면서 주가 하락이 저평가에 따른 것이 아닌 실제 매출부진에 의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드러나는 실체… 명품 대신 실속소비로

경기가 다시 좋아져도 명품기업들의 매출이 살아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명품기업들의 생산 원가와 노동착취적 생산 실태 등이 속속 드러나며 브랜드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있는 탓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명품의 대중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SNS가 명품시장 쇠퇴에 불을 댕기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중국 남부의 한 의류제조업체 직원이 엑스(X·옛 트위터)와 틱톡 등에 올린 게시물이 전 세계적 화제가 됐다. 이 직원은 “3만8000달러(약 5417만원)에 판매되는 에르메스의 버킨백이 우리 공장에서는 1400달러(약 190만원)에 제조가 가능하다”면서 재료가 되는 가죽과 인건비 등 제조 과정별 비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로고는 없지만 에르메스 버킨백과 똑같은 품질의 (저렴한) 가방이 필요하면 우리에게 구매하라”고 말했다.

명품업계에선 에르메스 등 초고가 브랜드의 경우 대부분 유럽에서 제작돼 이런 영상 내용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이미 명품기업들이 저렴하게 납품받은 가방 등을 수십 배에 판매한 사실이 드러난 터라 소비자들의 의심은 커져만 간다. 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 검찰이 12개 명품 브랜드 공급망을 조사한 결과 생산공장에서 53유로(약 7만8700원)로 납품받은 디올 가방이 무려 49배인 2600유로(약 387만원)에 매장과 백화점에서 팔리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하청업체 4곳 노동자들이 밤샘 근무, 휴일 근무 등에 시달린 것으로 조사됐으며, 불법 이민자가 고용된 사실도 확인돼 업계 전체 이미지에 큰 타격이 됐다.

중국 제조업체가 SNS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명품 대신 우리 제품을 사라”는 광고에 나선 것은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듀프(Dupe)’라 불리는 새로운 소비행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복제품’을 뜻하는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의 약어인 듀프는 명품과 유사한 디자인으로 제작된 제품을 부끄러움 없이 소비하고 심지어 SNS를 통해 공유하기까지 한다.

로고를 위조하지 않고 당당히 복제품임을 밝히는 ‘듀프’ 상품이 대형마트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판매되기까지 한다. 미국 월마트는 지난해 말 에르메스의 버킨백과 꼭 닮은 디자인의 듀프 상품을 온라인 등에 78달러(약 11만원)에 판매했는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며 순식간에 완판됐다. 월마트와 버킨백을 결합해 ‘워킨백’이라는 별명까지 얻어 SNS상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미국 CNN은 “에르메스와 같은 명품은 여전히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으나 가격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구매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이제 소비자들은 저렴하면서 품질이 좋은 복제품을 탐닉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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