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7월13일 오후 9시쯤, 미국 뉴욕의 한 변전소가 벼락을 맞으면서 문명의 도시는 암흑으로 변했다. 공포가 퍼졌고 결국 폭력이 난무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25시간 동안 뉴욕 시내 상점 1700여곳이 약탈당했고, 2000건 이상의 방화가 일어났다. 3000명 이상이 체포됐고, 이 과정에서 경찰도 200명 넘게 다쳤다.
당연히 늘 있는 줄 알고 쓰던 게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다면, 그건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로 이어진다. 공기와 물이 대표적이다. 인류의 발명품인 전기도 그에 버금간다. 뉴욕 대정전이 역사적 사례다. 그래서 ‘블랙아웃’(Black Out)으로 불리는 대정전은 영화나 소설의 매력적인 소재다. 통제 불능한 무질서와 사회시스템 붕괴,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을 현실적으로 그릴 수 있다. 그만큼 현대 문명은 전기 의존을 넘어 전기를 바탕으로 한다.
전기가 멈추면 일상이 멈춘다. 전기가 없는 도시와 생존은 상상할 수도 없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지난 28일 발생한 대정전은 국가 전체를 마비시켰다. 항공기와 열차가 멈추고, 교통 신호등이 다 꺼지고, 카드·현금인출기는 먹통이 됐다. 대형 슈퍼마켓은 결제 시스템이 끊겨 문을 닫았고, 휴대전화·인터넷도 쓸 수 없어 사람들은 아날로그 라디오를 찾았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는 “정전으로 스페인이 19세기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조기 총선을 앞둔 포르투갈에선 총리와 야당 대표 간 TV토론도 연기됐다. 바다 건너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2011년 9월15일 대정전 코앞까지 가며 사회적 혼란을 경험했다. 폭염으로 에어컨 등 전력 수요가 갑자기 급증하자 한전은 예고 없이 순환 강제 단전을 시행했었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스페인 대정전 원인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이상기후 탓으로 발생한 극심한 기온 차로 송전선에 이상진동이 발생(유도 대기 진동 현상)했거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순간적으로 전력수급이 불안정했을 수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일각에선 사이버테러 의혹을 제기한다. 지금까지 블랙아웃 공포는 그게 터진 후의 사후적 아노미였다. 이제는 대정전 원인을 모른다는 공포 하나가 추가될 판이다. 문명이 늘 편리하고 앞으로만 가지 않는다는 경고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