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 출범에 맞춰 금융 당국이 장기소액 연체 채권을 소각하기 위한 배드뱅크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설치하고 새출발기금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불법 사금융 예방 대출 예산도 최소 2배가량 증액한다.
4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민간 금융사가 보유하고 있는 부실채권 소각을 목적으로 하는 배드뱅크를 캠코에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국은 일반 금융거래 고객 이외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도 채권 소각 대상에 포함할 예정이다. 현재 구체적인 소각 규모와 대상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023년에도 당시 홍성국 민주당 최고위원이 캠코에 배드뱅크를 설치하는 내용의 ‘한국자산관리공사 설립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정부는 새출발기금 확대 방안 역시 들여다보고 있다. 금융 감독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새출발기금 지원 요건을 완화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새출발기금의 경우 여당과 야당 모두 대선 공약 때 내세운 부분이라 빠르게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새출발기금은 소상공인이 보유한 금융권 대출에 대한 원금 조정과 금리 감면, 상환 기간 연장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20년 4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사업을 영위한 개인사업자나 소상공인 가운데 3개월 이상 대출을 연체했거나 향후 빚을 갚기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현재 담보 10억 원과 무담보 5억 원 등 최대 15억 원까지 채무 재조정이 가능하며 원금은 최대 80%까지 조정해준다.
당국 안팎에서는 현재 평균 약 70%(매입형 채무조정 기준)인 원금 감면율을 높이는 안이 추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출금 규모와 범위도 검토 대상이다. 3월 기준 누적 신청 금액이 19조 3684억 원이지만 실제 채무 조정액은 5조 5019억 원에 그쳐 전반적으로 손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게 금융 당국의 판단이다.
새출발기금의 신청 요건 완화와 함께 부실채권 매입 규모도 최소 ‘40조+α’로 확대한다. 최근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신청액 중 일반 신용대출 같은 무담보채무의 비중이 높아 국고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시장에서는 새출발기금 확대와 함께 코로나19 당시 나갔던 정책자금에 대한 대대적인 탕감과 만기 연장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은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에 대해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제공했다. 당초 6개월 단위로 만기 연장을 했다가 2023년 2년을 연장했다. 올 9월이면 약 71조 원에 달하는 코로나 대출의 만기가 도래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으로 채무조정부터 탕감까지 특단의 대책을 약속한 만큼 파격적인 방안이 나올 수 있다는 예상이 있다.
금융 당국은 불법 사금융 예방대출(옛 소액생계비대출) 예산을 두 배가량 늘리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 올해 금융위는 불법 사금융 예방대출 최초 대출 한도를 기본 5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올리고 연간 공급 규모도 1000억 원에서 2000억 원으로 상향했다. 정치권에서 불법 사금융 예방대출이나 최저생계비 특례보증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금융 당국이 이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지 봐야 한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다만 금융계에서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가산금리 산정시 각종 출연금의 소비자 전가를 막고 정책 모기지의 중도상환 수수료를 단계적으로 면제한다고 밝힌 것도 부담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대규모 빚 탕감이 이어지면 모럴해저드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며 “자영업자가 힘든 것은 맞지만 구조조정과 같이 근본적인 대응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