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름 묻은 손으로 색소폰을 연주하고, 사람들과 기꺼이 기쁨을 나눈다. 색소폰 주자 김효곤, 김휘연

2025-05-17

두왕동에 색소폰 연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외삼촌이 연주를 너무 못하는 모습에 자신감이 생겨서, 세계 일주할 때 음악과 함께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음악이 어르신들 식사 봉사 전 무료하지 말라고, 어렵게 공부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아름다운 자연 속의 일부가 되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하고 연주한다.

악기 하나쯤 가지는 삶이 아름답지 않냐는 노회찬 전 의원의 말을 빌려 울산저널 독자들에게도 예술 활동을 권했다.

취미생활이 재능 기부로 이어졌고, 세계 일주하면서 버스킹 하고 싶다

Q. 소개 부탁한다.

김효곤(이하 “곤”): 이름은 김효곤이고, 지금 회사 다니고 있다. 취미생활로 색소폰을 분다. 이것도 재능이라고, 이 재능이 필요한 이들이 있어서 요즘 재능 기부를 하면서 살고 있다. 나이는, 우리 옛 나이로 이제 막 60 됐다.

김휘연(이하 “연”): 김휘연이다. 직장생활을 35년째 하고 있는데, 세계 일주를 하는 게 꿈이다. 10년 전부터 악기를 배웠고, 세계 일주하면서 버스킹 하는 꿈을 갖고 있다. 지금 색소폰, 팬플루트, 오카리나, 세 가지 악기를 배우고 있다. 회사 마치고 취미생활로 8년째 연습하고 있다.

Q. 여러 악기가 있는데 색소폰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곤: 예전에 시골 고향 집에 외삼촌이 색소폰을 들고 온 적이 있다. 그때 외삼촌이 색소폰 부는 줄도 몰랐는데 10년이 됐다 하더라. 10년 정도 불었으면 와, 베테랑이겠구나, 완전 프로겠구나. 잠시 후에 들었지. 근데 10년 불었던 것 치고는 너무 못 불어서 내가 자신감이 생기더라. 동기 부여가 그런 식으로도 되더라. 내가 지금 (시작)해도 10년 불었던 우리 외삼촌만큼은 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색소폰을 불게 됐다.

연: 제일 처음 시작한 건, 10년 전에 어릴 적 친구들이 많이 하는 기타와 하모니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문화센터에서 1년 정도 하고 있을 때쯤 색소폰 공연을 왔다. 소리를 들어보니까 너무 좋아서 저거다 싶어서 기타와 하모니카를 접고 바로 색소폰을 시작하게 됐다.

소프라노 색소폰과 팬플루트는 참 잘 어울린다

Q. 울산에서 단체 같은 데 속해 있나? 하는 공연에 관해서도 설명해 달라.

곤: 연습실에 있으면서 동호회에서 정기 연주회도 하고. 사단법인 천사운동본부라고 있다. 봉사하는 단체인데 거기에 소속돼 있다. 중구에 있는 천사운동본부에서 어르신들 무료 급식을 하는데, 급식 봉사하는 이들은 따로 있고 우리는 음악 봉사로 어르신들 식사하기 전에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연: 나도 같은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곤: 다른 이들도 있는데 조 편성 시간이 달라서 주로 (우리) 둘이 다닌다. 김휘연 씨는 팬플루트를 분다. 팬플루트를 대나무, 길고 짧게 층이 져서 주로 인디언이 부는 걸로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데, 팬플루트가 흔치 않은 악기거든. 흔하게 볼 수 없는 악기라서 희귀성도 있고, 색소폰과 조화를 이루니까 더 좋다.

동광학교와 연결된 건 3년 전. 우리 아파트 뒤에 동축산이 있다. 염포 전망대 아래서 우리가 버스킹을 했다. 어떤 부부가 지나가다가 멈춰서 한참 동안 들었다. 여성이 작가인데 수필집을 냈다는 거다. 출판기념회를 하는데, 와서 공연을 해줄 수 있냐고 해서 그 작가를 알게 됐고, 그 작가가 동광학교에 선생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그게 인연이 돼서 동광학교에 행사 있으면 우리가 가서 재능 기부하고 있다. 동광학교에서 자원봉사하는 교사들이 달팽이도서관도 해서 달팽이도서관에도 간다.

Q. 공연 출연료는?

곤: 재능 기부이고, 금전적으로 출연료를 받는 건 없다. 식사를 아주 맛있게 대접받고 온다. 동광학교도 자금이 없어서 다 자원봉사로 이루어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어제 같은 경우는 수육에다 식사를 아주 잘 준비해서 맛있게 먹으면서도 아, 여기는 자금 나오는 데도 없는데 이걸 다 어떻게 준비했나, 이런 걱정을 하면서 식사했다.

공연할 때 관람객이 함께 즐기고, 어린아이도 손뼉을 친다

Q. 버스킹 하면서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다.

연: 버스킹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에피소드는 크게 없고. 팬플루트 동호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요즘엔 개인 연습만 하고, 주로 색소폰을 연습하고 있다. 댄스곡 같은 경우 즐겁고 흥을 돋우는 음악이다 보니 공연할 때 관람객이 무대로 나와서 음악에 동화되고 춤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있다.

곤: 시간 될 때 버스킹을 자주 나간다. 통기타 치는 아는 형님과 둘이. 지난해 유채꽃이 만발했을 때, 슬도와 대왕암 공원을 잇는 둘레길에 유채꽃밭에서 공연하고 있는데, 신나는 곡을 (연주)하니까 아주머니들이 와서 같이 춤추던 게 아주 즐거웠다. 작년 가을에는 명촌억새공원에서 연주했는데,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가다가 아기가 반주에 맞춰서 손뼉을 얼마나 잘 치는지, 너무 예뻐서 아기를 유모차에서 내려서 안아줬다.

일도 열심히, 짬 날 때마다 연주도 열심히

Q. 직장을 다니면서 연습도 하고 공연도 하는데, 힘든 점은 없나?

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버스킹이나 재능 기부하는 일에 애로점은 없다. 회사를 빠지면서까지 하진 않거든. 회사 생활을 충분히 다 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하는 거니까. 우리가 시간을 좀 쪼개고 내 돈을 좀 들여서 하더라도 많은 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그런 데서 행복을 느끼고 보람을 느낀다.

연: 김효곤 씨는 ‘김효곤 색소폰TV’라는 유튜브를 하고 있다. 나도 세계 일주가 꿈이다 보니, (여행할 때) 노래와 댄스가 있으면 즐거울 것 같더라. 내가 노래는 못해도 노래를 대신해 악기를 연주하면 미래에 좀 더 즐겁게 살지 않을까 해서 악기를 시작했고. 나름의 꿈이 있다 보니 회사 마치고, 요즘 주간 조는 오후 3시 반이면 퇴근하거든. 그래서 시간적 여유가 좀 있어서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오후 근무일 때는 오전에 나와서 연습하다가 회사에 출근하고.

Q. 예술 활동에 대해 가족들 반응은 어떤가?

곤: 음악을 하기 전에는 운동이 취미였는데, 애들이 한참 자라는 나이 땐 이런 활동을 못 했다. 애들 다 크고 이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

연: 가족들은 내 음악 활동에 무관심했는데, 자원봉사 가서 공연한 걸 가족 단톡방에 올리면 딸내미들이 아빠 멋지다는 댓글 달고. 좋아하는 것 같다.

Q. 다른 지역에서도 공연한 적 있나?

곤: 연습실에서만 색소폰을 불다가 밖으로 드러내게 된 계기가, 내 고향 쪽에 한 부부가 유튜브 채널로 색소폰을 불면서 방송을 재미있게 하더라. 고향이 경북 김천인데, 내가 출연을 요청했고 그 채널에 가서 색소폰을 연주한 적이 있다. 채널 운영자들도 좋아했고 방송을 보는 이들도 호응이 좋은 것에 용기를 얻어서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밖에 나가서 버스킹도 하게 되는, 나를 드러내 보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연: 나는 아직 외부에서 활동할 정도의 실력이 안 되기 때문에. 프로에 준하는 실력이 안 되면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밖에서 활동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지원이 전문가들에게 몰린다. 아마추어에게도 지원 확장되길

Q. 울산에서 음악 활동을 하며 공연장이라든지, 지원이나 정책에 반영됐으면 하는 게 있나?

곤: 관 지원이나 도움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재능 기부를 하면서 내가 더 행복한 것 같다. 내 연주를 들어서 즐거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가 남들에게 뭔가를 줘서 오히려 내가 더 행복해지니까. 실내 공연장은 생각 안 해봤다. 야외 버스킹 장소가 요즘 많거든. 주로 일산해수욕장 쪽을 많이 이용하는데, 그쪽은 신고만 하면 된다. 이용료를 내지 않고.

연: 매년 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게 있다. 몇 년 전 내가 속해 있던 팬플루트 동호회에서 신청해서 1년에 한 번, 울산의 80개 정도 동호회 단체와 함께 우리도 활동 지원을 한 번 받았다. 색소폰 앙상블 동호회에 있을 때도 울주군에서 길거리 공연당에 선정돼 매월 지원받으면서 2년 정도 했다. 요즘은 경쟁률이 치열하다 보니까 몇 팀 선정도 안 되고, 요즘엔 (선정자들이) 전문가들 위주로 바뀐 것 같다. 우리 동호회나 자원봉사하는 이들에게 다양하고 폭넓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지원을 받게 되면 기간, 장소에 제한이 있고 제출하는 서류가 많다.

Q. 사용하는 색소폰에 관해 설명해 달라.

곤: (몸체가 일자로 뻗어 있는 게) 소프라노 직관이라고 하고, 알토 색소폰처럼 (몸체가) 구부러진 걸 소프라노 곡관이라고 한다. 소리는 직관이 더 나은 것 같고, 곡관 같은 경우 목걸이로 지탱하기 때문에 많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더 유리할 수 있다. 나는 직관만 목걸이 없이 손으로 들고 연주한다. 처음엔 알토로 시작했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색소포니스트인 케니지가 직관 소프라노로 연주하길래 따라 해봤는데, 이게 재미있어서 주로 이걸로 하고 있다. 알토로 2년쯤 하다가 소프라노로 바꾼 지는 5년 정도 됐다.

연: 소프라노는 고음이 나는 악기고, 테너는 저음이고, 알토는 중간 소리라고 보면 된다. 나는 알토 한 가지만 하고 있고, 8, 9년 정도 됐다.

곤: 대개 알토로 시작해서 알토만 계속하는 이들이 있고, 테너를 병행하는 이도 있다. 소프라노는 시작했다가 대부분 포기를 많이 한다. 작고 쉬울 것 같아서 만만하게 보이는데 불기엔 이게 더 어려운 것 같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자원봉사 공연과 길거리 공연으로

Q. 관객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고 있나?

곤: 지난해에는 정기적으로 일요일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했는데 (연주)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이제 정기적인 방송은 안 한다. 번개 방송이라 해서 커뮤니티에 올리고 라이브 공연을 할 때가 있다. 기회가 되면 버스킹을 자주 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도 들리는 게 생동감이 있어서 야외에서 하는 걸 아주 좋아하는데, 일산해수욕장 근처, 슬도와 대왕암공원 둘레길, 명촌억새공원 이런 곳에 주로 나간다.

매월 첫째, 셋째 주는 천사운동본부 공연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버스킹을 나가고. 주기적으로 하는 건 없다. 버스킹을 할 땐 거의 이렇게 둘이 하고, 통기타 치는 연주자와 같이 할 때도 있다. 천사운동본부 회원이 20여 명 되는데, 봉사에 참여할 땐 10명 정도 한다.

Q. 직업이 뭔가?

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에서 생산직에 있다.

연: 현대자동차에서 생산직으로 일한다.

산업·공업 도시에서 문화·예술 도시로 외연이 거듭날 수 있길

Q. 울산의 문화 수준을 진단해 달라.

곤: 울산에 온 지 23년 정도 됐는데, 다른 지역에 있을 땐 울산을 공업도시, 쇠를 만지고 화학공단이 있고. 그래서 삭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와보니까 공원도 잘 조성돼 있고, 일단 바다가 너무 깨끗하다. 바닷물이 투명하다. 서해안 쪽은 뻘밭이 있어서 바닷물이 투명하지 않다. 그런데 울산은 태화강도 너무 깨끗하고. 그래서 빨리 정이 들었고, 나는 울산이 너무 좋다.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보니 산책할 곳도 많고, 그런 데서 버스킹을 하면 사람들 대부분이 좋아한다. 가끔 새 소리도 듣고 싶고 벌레 소리도 듣고 싶은데 이런 악기 소리 때문에 자연의 소리를 듣는 데 방해되는 것 같다고 얘기하는 이도 있다. 가끔. 그럴 땐 미안하니까 조금 멈췄다가 한다. 대부분은 다 좋아한다.

연: 매스컴을 보면 울산이 최고의 부자 도시인데 음악이나 문화·예술 공연을 보러 갈 만한 게 별로 없었다. 그런 쪽으로 활성화돼서 울산이 문화·예술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울산이 너무 좋다

Q. 고향은 어딘가? 어떻게 울산에 오게 됐나?

곤: 경북 김천이다.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뭐, 삶이라는 게 그렇잖아. 살아가다 보면 이쪽 길로도 가게 되고. 울산에 동생이 있다 보니까 오게 됐다. 삭막한 도시인 줄 알았는데 너무 좋아서 정이 빨리 들었고. 원래 3년만 살다가 갈 거라는 생각으로 왔는데 23년째 살고 있다. 나중에 고향에 가서 살게 되더라도 울산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싶다. 울산을 아주 떠날 생각은 없다. 울산이 좋다.

연: 강원도 삼척이다. 군대 제대할 무렵에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취직도 해야 하고. 일본에 어학연수 겸 여행 가이드를 하려고 어학연수를 신청해서 아버지에게 말하니 자식을 외국으로 보내는 게 불안했던지, 울산에 있던 사촌 형에게 연락해서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연결해 줬다. 일본을 포기하고 울산에 오게 된 건데, 그때 현대자동차에서 엘란트라를 막 생산하기 시작할 때였거든. 엘란트라 공장인 3공장이 완공되면서 인원을 많이 뽑을 때 지원했으니까 만 35년이 지났다.

Q. 가족 얘기를 들려 달라.

곤: 연년생 남매를 두고 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애들은 없는 것 같고. 우리 딸이 나중에 결혼하면 결혼식장에서 내가 축하 연주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딸도 좋아하고 기대하고 있다.

내가 음악적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남들보다는 조금 더 있는 것 같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다. 아버지는 하모니카를 참 잘 불거든. 특별히 배운 적도 없다는데. 어릴 때 친구가 부는 게 부러워서 빌려서 한번 불어봤는데 그게 잘 됐던 모양이다. 하모니카 부는 사람들이 들어봐도 잘 분다고. 좋은 유전자를 물려준 아버지에게 대단히 감사하다.

외삼촌이 색소폰을 너무 못 불었던 게 내게 동기가 된 건데, 우리 가족 중에는 음악 하는 사람이 없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면서 재능 발휘를 못 했지만, 재능은 상당히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이 들고 주간 요양센터에 다니면서 농사일을 그만뒀는데 갖고 있던 재능이 발휘되기 시작한 거다. 하모니카 연주도 열심히 하고 노래도 많이 부르고,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고 있다.

연: 딸 둘이 있는데, 우리는 음악 관련한 얘기는 없다. 내가 손발 마사지 봉사, 풍선아트 봉사를 10년씩 하다 보니까 봉사 쪽으로 영향을 받았는지 둘째 딸은 국제 해외 자원봉사를 하면서 대학을 졸업했고, 지금 캄보디아 자원봉사에 나가 있다. 우리 가족 중에 음악 활동하는 건 나밖에 없다.

Q. 자원봉사를 계속해 온 건가?

연: 10년 됐다. 10년 전 현대자동차 평일 자원봉사로 시작했다. 3시 반 퇴근으로 주야 교대 근무가 바뀌면서 새로 생겼던 건데, 회사에서 1년에 두 번 전문가에게 한두 달 교육을 받아서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있었거든. 16명으로 출발했는데 다 퇴직하고 3명밖에 안 남았다. 내가 10년 동안 총무를 맡았는데 작년에 인원이 너무 적어서 해단식을 했다. 자동 해단식.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유쾌한 삶이길 바란다

Q. 울산저널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곤: 울산저널 독자님들, 반갑다. 우리 국민의 생활 수준이 많이 높아지고, 먹는 것보다 정서적인, 즐거운 음악이나 미술이나 이런 예술 쪽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둔다. 예전 어느 정치인이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삶을 살면 좋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그 말에 용기를 얻어서 색소폰을 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울산저널 독자님들도 악기 하나 또는 그림을 그린다든지 해서 정서 함양에 힘을 쓰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연: 울산저널 구독자님, 반갑다. 나는 악기를 시작할 때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내 연주를 듣고 음악 치료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큰 꿈을 갖고 시작했지만, 아직 실력은 미미하다. 항상 음악이 있으면 즐겁더라. 여러분도 악기 하나 정도는 배우는 게 노후의 가장 큰 재산이 되지 않을까. 즐거운 인생을 위해 그렇게 생각한다. 울산저널과 이렇게 인연이 됐는데, 많이 봐주고 많은 관심 보여주고, 앞으로 울산저널이 좋은 활동들을 많이 찾아다녀서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구독과 시청 바란다. 고맙다.

이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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