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S정부 성패 가를 골든타임…인수위 5개 분과 ‘국정 큰그림’
“누가 인수위원회에 들어간 데?”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제14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 출범을 앞두고 1992년 연말부터 정계와 관계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인수위 구성이었다. 인수위는 예나 지금이나 출세 지름길로 통한다.
1993년 1월 4일. 대통령직 이날 오전 인수위원회(인수위)가 공식 출범했다. 문민정부 첫 출발이자 권력 이동의 서막이었다. 김영삼 차기 대통령은 인수위원장에 정원식 전 국무총리를 지명했다. 그는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장으로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대통령직 인수위 역할과 활동은 차기 정부 5년 국정을 끌어나갈 이정표를 마련하는 일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순항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만큼 인수위 파워는 대단했다.
오전 10시.
김영삼 차기 대통령은 서울 여의도 민자당사에서 정원식 위원장을 비롯한 대통령직 인수위원 15명에게 임명장을 주었다.
“업무 인수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망의 대상인 인수위원 15명은 김한규, 남재희, 박관용, 서정화, 신경식, 양창식, 유경현, 이재환, 이민섭, 이해구, 이환의, 장영철, 최병렬, 최창윤 씨 등 이었다. 인수위원 15명 중 남재희 씨 등 7명이 문민정부에서 장관으로 발탁됐고 박관용 씨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말 그대로 인수위 참여는 출세 코스였다.
대통령직 인수위원들은 임명장을 받은 뒤 곧바로 당사 부근 뉴서울빌딩에서 현판식을 하고 업무를 시작했다.
정원식 위원장은 현판식을 마친 뒤 기자실에 들려 “인수위원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최선을 다해 인수위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인수위는 뉴서울빌딩 7층과 11층 2개 층을 사무실로 사용했다. 11층에는 차기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해 비서실장실과 비서실, 인수위원장실, 행정실과 회의실을 마련했다.
차기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11층 출입구에는 전자검색대를 설치해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고 건물 주위에도 100여명의 경찰을 배치해 안전을 빈틈없이 했다.
7층에는 기자실을 비롯해 4·5분과 위원회 회의실과 대변인실로 사용했다.
인수위는 이어 △통일·외교 안보 △정무 △경제1 △경제2 △사회 문화 등 5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했다.
김영삼 차기 대통령은 인수위 1차 회의를 주재하고 아래와 같이 당부했다.
“개혁 목적은 국가 이익 극대화에 있는 만큼 안정 속 개혁을 실천할 수 있는 장기 방안을 마련해 주기를 바랍니다. 필요한 개혁은 과감하게 추진하되 그것이 국민을 불안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당과 국민, 그리고 차기 대통령 사이에 간격이 생기지 않도록 인수위 활동은 조용하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
정원식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 가장 모범적인 대통령직 인수 작업을 하도록 모두 합심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라고 화답했다.
김 차기 대통령은 이날 인수위원들과 63빌딩에서 오찬을 함께 하며 거듭 “인수위가 이 시대 멋있는 정부와 멋있는 나라 만드는데 기초를 닦는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이날 업무 분장을 끝내고 구체적인 업무 계획을 수립해 정부 부처를 상대로 본격적인 인수 작업에 착수키로 했다.
당시 인수위원 K의원의 증언
“인수위 출범은 문민정부 시대 개막을 알리는 시작이었어요. 인수작업에 가장 역점을 둔 것은 김영삼 차기 대통령이 강조한 '작고 깨끗하며 강력한 정부' 구상을 구체화하는 일이었죠. 당선자의 지시는 경제 활성화 대책과 부정부패 방지대책,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방안 등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인수위 역할은 정부 각 부처의 조직과 기능, 예산을 파악하고 정부 인적, 물적 지원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며 국가 주요 정책을 수립하는 일이었다. 김영삼 차기 대통령 요청이 있을 경우 장관이나 정부 요직 임명에 관한 인사자료도 준비할 계획이라고 신경식 인수위 대변인이 밝혔다.
“차기 대통령이 이러이러한 인사에 대한 자료를 준비해라. 그런 요청이 있으면 인사자료도 준비할 방침입니다.”
인수위는 6일 뉴서울빌딩에서 정원식 위원장 주재로 전체 회의와 분과별 회의를 잇따라 열고 앞으로 운영 일정을 협의했다. 우선 △6~10일 세부운영계획 확정과 요원 충원, 정부측 취임식 준비보고 △11~17일 분과위별 소관부처 장·차관으로 부터 주요 현황보고 △18~30일 김 차기 대통령에게 부처별 업무 현황보고 등으로 세부 일정을 잠정 확정했다.
가장 관심사였던 분과별 인수위원도 확정, 발표했다.
인수위는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담당한 제1분과 위원회는 정원식 위원장과 박관용, 이환의 위원을 임명해 통일원과 외무부, 안기부, 국방부 업무를 보고받고 업무를 인수키로 했다.
정무 분야를 담당한 제2분과 위원회는 이해구, 최병렬, 최창윤 위원이 맡아 청와대와 총리실, 내무부, 법무부, 총무처, 공보처, 정무1, 정무2, 법제처와 감사원 업무를 받기로 했다.
경제1분과는 유경현, 이민섭, 장영철 의원으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상공부, 동자부 업무를 담당키로 했다. 경제2분과는 서정화, 신경식, 양창식 위원으로 농림수산부, 건설부, 노동부, 교통부, 체신부, 과학기술처 소관 업무를 넘겨받기로 했다.
사회 문화를 담당하는 5분과는 김한규, 남재희, 이재환 위원을 임명해 교육부와 문화부, 체육부, 청소년부, 보사부, 환경처, 국가보훈처를 소관으로 했다.
분과별 간사에는 박관용 (제1분과) 최병렬(정무) 이민섭(경제1) 양창식(경제2) 남재희 위원(사회문화)을 각각 선정됐다. 이밖에 전문위원과 자문위원, 부처 파견 공무원 등 91명이 인수위에서 일했다.
인수위는 매일 오전과 오후에 전체 회의와 분과 회의를 열었다. 회의 결과는 창구 일원화를 위해 대변인이 발표키로 결정했다.
인수위는 운영기간 중 모두 17차례 전체 회의를 개최해 인수위 운영계획과 대통령 취임식 행사 준비, 부처별 업무보고, 차기 대통령 지시 사항,경제 활성화 대책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인수위는 1월 11일부터 5일 동안 33개 정부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있다.
과학기술처는 1월 13일 대통령직 경제2분과 위원회에서 업무보고를 했다.
박진호 과학기술처 차관은 인수위 보고에서 “올해 G7 프로젝트와 신기술 기업화를 차질 없이 추진, 전략적 연구개발사업의 토대를 뿌리내리기로 했다”고 보고했다.
박 차관은 “올해 4051억원을 투입, G7프로젝트 11개 과제를 차질 없이 추진하고 550억원 상당의 과학기술개발 복권을 발행, 기술개발자금지원 규모를 4000억원으로 확충해 이를 중소기업에 집중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첨단기술 분야의 석박사 과정은 해마다 2500명씩, 한국과학기술원 정원을 현재 1860명에서 1996년까지 3300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박 차관은 이밖에 △광주과학기술원 95년 개교 △러시아와 43개 첨단기술 기업화 과제 조기개발 △중국과 레이저응용기술 10개 분야 공동연구 △제1차 한미과학기술포럼개최 계획을 함께 보고했다.
이런 가운데 인수위가 '점령군 같은 행태를 보인다'는 일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인수위에 업무보고를 하러 갔던 정부 산하 A공기업 사장은 “아무리 인수위라고 사람을 무시해도 되나”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는 전직 국회의원 출신이었다.
과학기술처는 인수위 보고에 이어 1월 21일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청와대 지시로 보고는 서면으로 했다.
과학기술처는 이 서면 보고에서 “올해 'G7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기술개발복권을 발행하는 등 2000년대 과학기술 선진 7개 국권 진입을 위한 기틀 마련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인수위 보고와 같은 내용이었다.
인수위 활동으로 권력 추는 차기 대통령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지는 권력과 뜨는 권력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5년마다 되풀이하는 도도한 권력 이동 흐름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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