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 2005년 기준 납세 1위에 올랐던 회사원. 25년간 헤지펀드 운용을 통해 800억원, 우리 돈으로 약 7600억원을 벌어들인 전설의 펀드 매니저.
기요하라 다쓰로가 쓴 ‘나의 투자술 ― 시장은 누구에게 미소 짓는가’(わが投資術 市場は誰に微笑むか)이 ‘나의 투자술’(이레미디어)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됐다. 2023년 은퇴하며 그 동안의 경험과 투자 철학을 한 권에 담았다. 이 책은 지난해 출간 이후 일본에서 20만 부 이상 팔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에서 증시 상승과 신NISA제도 도입으로 개인들 사이에서 주식 투자 붐이 일어난 것도 책의 인기에 한몫한다.
미국에는 성공한 억만장자 투자자와 창업가가 많다. 반면 한국 증시와 구조적으로 닮은 점이 많은 일본 증시에서는 성공한 투자자나 창업자의 서사가 드물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가 있지만, 그의 투자 무대는 일본이 아니라 미국과 글로벌 시장이다. 일본 증시 안에서, 그것도 장기적으로 성과를 낸 기요하라의 성공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기요하라는 2018년 인두암으로 목소리를 잃었다. 그럼에도 펀드 운용을 멈추지 않았다. 투자자들에게 상당한 수익을 돌려주었고(물론 본인의 부도 함께 늘었다), 2023년 펀드를 폐쇄하며 은퇴했다. 은퇴 이유는 단순했다. “누군가의 자금을 책임지고 운용하기엔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1959년생으로, 올해로 65세다.
고객 수익률 뒷전인 증권사 때려치고, 헤지펀드 매니저로 취직하다
그가 대학 졸업 후 입사했던 노무라증권에서 나쁘지 않는 성과를 거두는 주식 세일즈맨이었으나, 때려치고 나와 헤지펀드 매니저의 길로 들어섰다. 고객의 수익률은 뒷전이고, 잦은 매매로 증권사의 이익을 불려야만 승진할 수 있는 구조, 그리고 그런 사람들만 남아 있는 조직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타워투자자문에서 K1 펀드를 론칭한다. 명색이 헤지펀드인 만큼 시장 등락과 무관하게 수익을 내기 위해 롱·숏 전략을 내세웠다. 시장에서 외면받은 저평가 중소형주는 매수하고, 고평가되기 쉬운 대형주는 숏하는 방식이다. 일본에서도 대부분의 중소형주는 1년에 리포트 한 장 나오지 않고, 기관투자자 포트폴리오에서 배제된다. 그 결과 실제 가치보다 싼 가격에 거래된다. 반면 국내외 기관과 외국인 자금이 몰리는 대형주는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거래되기 일쑤다.
시장의 빈틈을 파고들겠다는 전략이었다.
기요하라는 가치투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돈 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대형주는 보고서도, 투자자도 늘 문전성시라 일부를 제외하면 저평가되기 어렵다. 중소형주는 그 반대다. 다만 그는 ‘비지떡’을 사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PER, PBR 같은 지표상 싸 보인다고 무작정 사들이면 이른바 ‘가치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성장성이 있는 가치주다. 순현금 지표도 꼭 챙긴다. 무엇보다 경영자의 근성과 성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형 은행은 누가 행장을 맡아도 경영 성과는 똑같다, 작은 회사는 사장이 누구인지에 따라 미래가 크게 좌우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본판 ‘피터 린치’이자 ‘소로스’
1998년 7월, 펀드를 세울 즈음 그는 야간열차를 타고 삿포로로 향했다. 목적지는 가구 회사 니토리. 훗카이도 척식은행이 파산하면서 보유 주식들이 헐값에 쏟아졌고, 그 중하나 엿던 니토리 주식도 휴지조각이었다. 기요하라는 이 회사가 제조와 소매를 동시에 영위하는 구조적 강점을 지녔다는 점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척식은행을 찾아가 매입 가능한 주식을 사들였다.
당시 6억 엔(약 60억 원)으로 시작한 K1 펀드는 한 종목에 NAV의 25% 이상을 담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그는 이 한도를 가득 채웠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2004년, 니토리 주가는 10배가 됐다(현재는 100배). 그는 모두 매도했다.
그외에도 시총 5000억 이하의 저평가 중소형주들을 사모아 적정가격이 되면 팔았다. 중소형 리츠 역시 그의 저평가 중소형주 투자 전략이 빛난 사례다.
K1 펀드 자산은 1500억 엔까지 불어났다. 그는 이후 두 개의 펀드를 추가로 운용했다. 뛰어난 성과에 투자자가 몰렸고, 운용 성과가 다시 자산 증가로 이어졌다. 1998년 100이었던 펀드 기준가는 2023년 9100으로 마무리됐다. 연간 기준으로 약 91배 성장한 셈이다.
시련도 있었다. 특히 리먼브러더스 사태는 그에게 ‘궤멸적’ 위기였다. 위기 직전해인 2007년, 외국인 자금이 일본 증시로 몰리며, 그가 숏 포지션을 잡아둔 대형주들이 급등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숏을 청산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듬해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발생했다. 그가 보유한 중소형주는 급락했고, 이를 방어해줄 숏 포지션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2년 연속 롱과 숏 양쪽에서 모두 얻어맞으며 그는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고객들은 줄줄이 환매에 나섰고, 공포에 휩싸인 시장에서 급락한 중소형주를 팔기도 어려웠다. 이때 그는 자신의 예금 30억 엔(약 280억원)을 펀드에 쏟아 붓고, 고객들을 찾아가 설득했다. 시장이 정상화되면 좋은 기업의 주가는 반드시 반등할 것이라고. 동시에 투자 기업들에게는 자사주 매입을 권유했다. 위기가 진정되자, 그의 말대로 주가는 급등했다.
기요하라는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가치투자자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가치투자자로만 규정하지 않는 이유는, 기회의 문이 열릴 때 ‘마켓 타이밍 투자’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기회의 문은 찰나다. 공포를 이성으로 누르고, 칼날을 잡을 수 있는 이에게만 허락된다.
그중 하나가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2020년 3월 초부터 하락하던 증시는 19일, 패닉 속에 바닥이 무너졌다. 이때 그는 단 한 시간 동안 ‘호텔’을 제외한 상업시설 리츠를 쓸어 담았다. 머리보다 손이 먼저 반응하던 순간이었다. 레버리지까지 동원해 매수했고, 공포가 잦아들자 우량 리츠들은 급등했다.
“개인들, 주식 투자 안하면 손해”
기요하라는 일본에서 ISA·NISA 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개인들에게 주식투자를 안하면 손해라고 조언했다. 대형주에 투자할 생각이라면 ETF를 권했다. 반면 기관투자자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저평가 중소형주 투자는 개인 투자자에게 더 적합하다고 조언한다. 펀드처럼 청산 시점이나 평가 압박이 없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고집스럽고, 집요하며, 솔직하다. 짙은 화장 없이 맨얼굴을 내보이는 투자 장인 같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고, 실수를 숨기지 않는다. ‘자아가 비대하지 않은’ 일본식 투자 구루다.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것은 믿지 않는 성격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도 책에 담겼다.
산전수전공중전을 겪고 살아남은 전설적인 투자자지만, 그는 스스로를 특별히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천재적인 비법도 없다. 저평가 중소형주에 대한 믿음은 피터 린치를, 야수의 심장으로 시장에 반하는 야성적인 투자 스타일은 소로스를 닮은, 일본의 전설이다.
■밑줄쫙
· “대형주로 이익을 내려면 시장이 보여주는 일순간의 빈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반면 저평가 소형주는 놀라울 만큼 빈틈투성이다.”
· “나는 소형주든 대형주든 저평가 상태가 아니면 사지 않는다.”
· “폭락한 주식을 사는 것의 리스크는 크지 않다. 다만 투자자들은 큰 리스크를 짊어졌다고 ‘느낀다’. 공포를 이기려면 제대로 된 직장을 갖는 편이 낫다.”
· “(리먼 사태 당시) 마지막에는 나의 전 재산인 은행 예금 30억 엔도 펀드에 쏟아부었다. 펀드 매니저로서 당연히 져야 할 책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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