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승씨는 고부사이가 좋았다. 시어머니에게 최선을 다했고 모진소리 들어도 못 들은 척 웃음으로 대신했다.
음식 투정은 미웠지만 가난했던 세월의 흔적 품으로 안아줬다. 시어머니의 ‘젊어서 고생했다’는 무용담은 끝없이 늘어지고 수시로 며느리의 희생을 강요했다.
서랍에는 누가 알까 숨겨놓은 곶감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쁜 손주 무릎에 앉히면 쌈짓돈 꺼내갈까 비를 먹은 구름처럼 불편함만 가득하다. 물려받았다는 색 변한 금가락지는 죽어서도 가져간고 한다. 잔칫날 손님으로 가면 신나는 표정이다. ‘사흘을 굶고 왔다’는 우스갯 농담은 겁부터 나는 상황이고 동네에 창피하다.
매번 음식이 ‘짜다’, ‘맵다’는 투정에 더 달라고 한다. ‘욕심의 창고’는 빈틈없이 빽빽해도 값으로 치면 보리쌀 세되 주머니는 빈약하다.
영감 하는 일에 머리띠 매고 반대하고 자식은 순위를 매겨 은근히 부부싸움의 원인을 제공한다. 타고 나온 천성 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요양원에서의 마지막은 측은하고 도리에 어긋났다. 입술 무는 반성으로 끝냈지만 허전한 빚이 남은 듯 기분은 무겁고 쳐져간다.
부모님 제사에 언니와 남동생은 ‘시간아 빨리 가라’며 급해진다. 삶과 죽음이 분명히 다른 데 잊을만하면 귀찮은 걸음에 엎드려 절을 해도 진심은 없고 껍데기만 있다. 으레 그런 줄 알면서도 분위기를 맞춰야 한다. 영정 사진 모셔놓고 불을 밝히려는 순간 초대하지 않은 시어머니가 떡하니 주인 자리에 앉아 있다. 망측하며 뜯어말리다 잠에서 깨어났고 달력을 보니 망자의 생일이다. 한숨이 절로 난다.
돌아가신 후에도 예를 갖췄고 적당한 때 책임에서 벗어나려는데 어림없다. 발목이 잡혔다. 곧이어 시누이에게서 온 전화는 더욱 가관이다. 꿈에 엄마가 나오더니 생활비에 병원비 달라 울며 속상해하셨단다. 덧붙이길 호화호식 하는 올케에게 맡겨놓은 게 있으니 당장 내놓으라 닦달을 하셨단다.
이 무슨 조화인가. 쓰러지는 오두막에 보쌈당하듯 시집왔고 흥부집 제비 노릇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엄연한 사실인데 말문이 막혔지만 중요한 시험을 앞둔 아들과 멀리서 공부하는 딸에게 누가 될까 시장을 보고 왔는데 뜬금없이 남편이 새벽녘에 엄마가 밥을 잔뜩 해서는 숟가락으로 떠 먹였단다. 동분서주 바쁘게 움직였다.
연유나 들어보자 청하니 염치 불고 꽃가마를 태워달란다. 뜻을 풀이하면 자신을 위해 영험한 기도를 해주면 누워 앓고 있는 남편을 데리고 떠나겠다고 한다. 일방적인 거래 조건이다. 앞으로도 잘 챙겨 드릴 테고 바라는 것도 없으니 미련 없이 가시려는 착한 심정은 칭찬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