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6일(현지시간) 전날 진행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두 대통령이 서로를 공격하기보다 서로의 간극을 좁힌 좋은 시작을 했다”고 평가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의지를 밝힌 것과 관련 “오히려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아첨은 트럼프에 활용할 좋은 수단”
볼턴 전 보좌관은 이날 미국의 싱크탱크 한미연구소(ICAS)가 주최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양국 대통령이 모두 암살 시도를 겪었다는 점에서 실제 유대감이 형성된 것 같다”며 “특히 이 대통령은 아첨(flattery)에 능숙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현 정부에서 활용하기에 항상 좋은 수단이고 이번에도 효과를 발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간 관계를 상대국 지도자와의 개인적 관계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며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트럼프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를 언급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고 반복적으로 만나 함께 골프를 쳤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회담이나 북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아베 전 총리에게 전화했던 것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확립된 관계를 바탕으로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일본의 국익뿐 아니라 미국과 한국의 국익에도 매우 성공적으로 기여했다”고 했다.

“가장 큰 우려는 오히려 대북 대화 재개”
볼턴 전 보좌관은 그러나 정부가 이번 회담의 성공 요소 중 하나로 제시하는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 대한 지속적인 유혹과 첫 임기 때 했던 세차례 회담에 이은 또 다른 회담의 욕망을 드러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고 했다.

그는 “만약 회담이 성사된다면 장소는 평양이 될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북·미 회담이) 싱가포르, 하노이, DMZ(비무장지대)로 이어졌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나지 않은 곳은 이제 단 한 곳, 북한의 수도 평양뿐”이라고 말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노벨상을 정말 원하는 사람(트럼프)이 있지만 우크라이나 공격이나 전적으로 옳은 조치인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 폭격만으론 상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잠재적 협상으로 좁혀졌다”고 했다.
그는 “근거는 모르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핵무기 폐기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고, 중국도 동의할 거라고 믿는 것 같다”며 “이러한 사고방식에 빠지면 미국과 러시아, 중국뿐 아니라 북한까지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노리고 대북 대화를 진행할 경우 대화의 목표는 비핵화가 아닌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방향이 될 거란 지적이다.
입지 키운 김정은…“北에 최대압박 한 적 없다”
볼턴 전 보좌관은 “지금까지의 대북 제재가 북한의 핵 정책과 주요 분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히 맞다”면서도 “우리는 아직 경제적 최대압박을 가하지 않았고 제재도 효과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등 실질적 최대 압박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최근 공격을 가한 이란의 예를 들며 “아시아에서 이스라엘의 역할을 수행할 의사가 있는 국가를 보지 못했다”며 “이스라엘의 행동이 미국의 이란 핵 프로그램 공격을 촉발한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특히 북한이 유럽(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하는 예상치 못한 전개를 보이는 등 러시아와 동맹을 강화해 항상 우월적 지위에 대한 불만을 가져왔던 중국과의 사이에서 움직일 여지를 확보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에게 보이는 집착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 불능을 북·러가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트럼프가 김정은과 (비핵화에 대한)화해 욕구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전쟁에서 패배를 피할 게 아니라 승리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며 “지금까지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18차례에 걸친 제재 패키지를 부과했는데, 왜 18번의 제재를 한꺼번에 시행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軍부지 요구’는 사업”…“‘동맹 현대화’ 한·일 주도”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언급한 ‘미군 부지 소유권 요구’에 대해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업자이고, 이것은 ‘저기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미의 사업”이라며 “트럼프가 미국을 그가 운영하는 사업체로 활용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어떤 생각을 하게될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령 서울의 용산 미군기지를 보면 미군의 역할을 멈추자마자 서울의 핵심 지역이 됐고,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거기서 큰 돈을 벌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과정에 앞서 속도를 내고 있는 이른바 ‘동맹의 현대화’에 대해서도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주문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동맹의 현대화는 정책의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면서도 “(해당 논의는) 미국내 고립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한반도나 일본에 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전개돼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한국과 같은 첨단 기술 보유 국가가 현대화를 돕는 주요한 요소가 돼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이러한 노력이 미국의 (안보)우선순위를 유럽과 중동에서 아시아로 기울게 하는 것을 넘어 아무 것도 우선순위로 삼지 않는 유혹으로 빠지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이와 관련 “3자 협력의 규모가 클수록 미국의 이익에 부합함에도 한·미·일 안보 강화를 추진하는 주체는 아이러니하게 서울과 도쿄의 몫이 됐다”며 “두 아시아 국가가 주고권을 잡고 트럼프에게 (안보 방안을)제시하는 것이 트럼프가 아이디어를 주도하게 하는 것보다 진전을 이루기 더 쉬운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레임덕’ 대통령…MAGA도 분열될 것”
그는 다만 이러한 기류와 관련 “트럼프는 신임 대통령이자 (연임이 불가능한) 최초의 레임덕 대통령으로 지위가 점차 약화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날 경우 마가(MAGA)도 분열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위한 일관된 철학이나 대대적 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마가 역시 사실 서로 상충되는 견해를 가진 다양한 사람이 모인 집단”이라며 “2028년 대선에서 모든 공화당 후보가 마가를 부정하지는 못하겠지만 내부 경쟁과 분열을 통해 마가는 결국 유산을 남기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안보 정책을 주도했던 볼턴 전 보좌관은 2019년 해임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에 강한 우려를 표명해왔다. 지난 22일엔 연방수사국(FBI)가 자택 압수수색을 비롯해 볼턴 전 보좌관에 대한 강제수사에 착수하자,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를 “정적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본격적 보복의 신호탄”으로 규정해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