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저녁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고시촌. 좁은 복도 양쪽에 빽빽이 들어선 10여 개의 작은 방 문틈으로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공용 샤워실을 오가는 청년들의 발걸음과 복도 끝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는 소리만 들릴 뿐 주위는 온통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최지훈(27)씨는 5평(약 16.5㎡) 남짓한 이곳 고시원에서 2년째 생활 중이다. 조그만 중소기업에 다니며 월 200만원을 벌지만 50만원이 넘는 월세와 통신비·식비 등 고정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보니 다른 곳으로 옮길 엄두조차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최씨는 “주거비가 싼 곳을 아무리 찾아도 반지하나 고시원밖에 없더라”며 “좁은 방에서 혼자 매일 똑같은 일상만 반복하다 보면 ‘내게도 미래가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곤 한다”고 털어놨다.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인 1인 가구 청년은 비단 최씨만이 아니다. 서울 강동구에서 혼자 사는 직장인 이소현(29)씨는 “자취 5년차인데 여전히 옥탑방에 산다”며 “빗물이 새고 난방도 제대로 안 되지만 그래도 월세가 저렴해 매번 ‘탈출해야지’ 싶다가도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 몇몇 친구들이 잇따라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소식도 그의 마음을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청년 1인 가구가 갈수록 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중 상당수가 ‘주거 빈곤층’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무조정실이 지난 3월 발표한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19~34세 청년 중 1인 가구는 23.8%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거의 네 명 중 한 명은 혼자 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이 가장 고통받는 요인으로 주거 문제를 첫손에 꼽는 비율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청년정책연구원 등 각종 기관 조사에서도 자신이 주거 빈곤층이라고 답하는 청년이 30%를 웃돌고 있다. 여기에 최근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전세사기도 피해자의 75%가 2030세대일 정도로 청년층이 전세사기의 주된 타깃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알바를 2개 이상 뛰며 조금씩 돈을 모아온 1인 가구 청년 이모(30)씨도 전세사기를 피하지 못했다. 이씨는 “옥탑방에서 반지하, 다시 고시원으로 전전하다가 이제 좀 제대로 된 집을 구했나 싶었는데 지난해 말 전세사기를 당했다”며 “보증금도 다 잃은 뒤 겨우 급전을 구해 4평 반지하 원룸으로 되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식이나 코인도 아니고 매일 생활하는 집 문제로 사기를 당했다는 허탈감에 최근엔 우울증까지 찾아왔다”며 고개를 떨궜다.
청년 주거 빈곤의 핵심은 결국 월세 부담과 열악한 거주 환경이다. 20대 1인 가구 중 월세로 거주하는 비중이 64.1%에 달하는 상황에서 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월세는 계속 치솟다 보니 소비할 여력조차 없다는 게 1인 가구 청년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아무리 벌어도 월세 내고 나면 끝”이란 자조 섞인 말이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회자될 정도다.
더 나아가 이 같은 주거 불안정은 단순한 거주의 문제를 넘어 청년들 삶 전반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취준생 김보람(25·서울 은평구)씨는 “지금은 일자리보다 당장 살 집이 더 절박한 상황”이라며 “주거가 안정돼야 공부도 하고 면접도 다닐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3월 국무조정실 조사에서도 2030 청년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책 중 ‘주거 지원(45.7%)’이 1위에 올라 ‘일자리 대책(33.5%)’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도 청년 전세사기 방지 대책과 청년 임대주택 확대 정책 등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의 체감도는 여전히 낮은 실정이다. 지난 4월 청년·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 경쟁률이 전국 평균은 38대 1, 서울은 무려 229대 1에 달했을 만큼 수요와 공급의 간극 또한 좀처럼 줄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청년층 주거 빈곤이 고용은 물론 결혼·출산 등 범국가적 현안과도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일회성 대책이 아닌 종합적·구조적 접근을 통해 보다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백인길 대진대 교수는 “청년들을 위한 주택 공급은 물론 주거 바우처 제도 확대 등 실효성 있는 정책도 함께 강구해야 할 때”라며 “이와 동시에 정책의 실제 성과를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보완하는 시스템도 구축해야 실천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교통이 편한 곳의 노후화된 빌라 등을 정부가 적극 매입해 청년 주거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도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