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장르로 600만 조회 수 기록한 유튜버
자전적 소설 '꽤 낙천적인 아이'로 문단 주목
삶의 서늘한 고단함을 유머러스한 문체로 표현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풋내기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 중인 원소윤이 장편소설 '꽤 낙천적인 아이'(민음사)를 펴냈다. 이제 막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신인 코미디언이 쓴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이야기이자 우리 마음을 위로하는 낙천적인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소설을 펴내기 전에 원소윤은 코미디 장르의 유튜브 콘텐츠로 먼저 대중을 만났다. '서울대도 들어갔는데 클럽은 못 들어갔다는 여자', '자소서 봐 달라는 사람은 많은데 인생 네 컷 찍자는 놈은 한 명도 없다는 여자', '혼자 자취한다는 말이 제대로 어필됐는지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여자' 등등. 그중 어떤 영상은 600만 조회 수를 상회할 정도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는 원소윤은 유쾌하면서도 아이러니한 화법으로 사회적 시선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선명하되 단순하지 않고, 유쾌하되 휘발되지 않는 문학적 유머를 선사한다.
'서울대를 졸업했어요. 아, 못 들으셨어요? 저는 서울대 출신입니다. 대박이죠. 끝날 때까지 서울대 얘기 스무 번은 더 할 거예요. 저는 서울대 출신입니다. 저희 집은 유서 깊은 블루칼라 가정이고요. 그러니까 저를 좀 보세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번 보세요. 저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에서 완전히 미끄러졌습니다. 여러분, 기술을 배우세요. 근데 저는 제가 블루칼라 가정 출신인 게 좋아요. 좀 든든하달까? 참고로 '죄수복'도 블루칼라인 거 아시죠?' - '꽤 낙천적인 아이' 183쪽.
이 소설은 평범함 속에 각자의 비범함을 감추고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을 탐정처럼 염탐하고 작가처럼 통찰하며 인생과 세상을 배워 나가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기도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할아버지 치릴로는 미운 사람들에게 벌을 내려 달라고 열심히 기도한다.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 봉사에 꾸준히 나가는 엄마는 어째서인지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재소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알린다. 조부모, 부모, 자신과 오빠까지, 가톨릭 전통 가문의 3대를 둘러싼 다양한 에피소드는 한 장면도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을 정도로 아이러니한 재미가 빛난다.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만큼 독창적으로 재미있다는 평가다.

명랑하고 따뜻하며 명석한 유머가 담겨 있는 각각의 에피소드의 이면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과 그로 인한 슬픔이 있어 그 웃음의 깊이를 더한다. '나'의 탄생이 있기 몇 년 전, 엄마와 아빠는 세 살짜리 아기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기가 떠난 9월이면 엄마는 종종 넋을 놓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런 엄마가 혹시라도 나쁜 마음을 먹지는 않을까 내내 근심에 싸여 있기도 한다. 무거운 마음으로 신발주머니를 툭툭 차며 학교에 가고, 학교에 있다가도 쉬는 시간이 되면 쪼르르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기분이 어떤지 확인하고, 엄마에게 잘못한 일을 사과한 뒤, 더 나은 딸이 되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고 싶은 마음에 하는 행동들이다. 관심 받고 싶은 마음, 더 사랑받고 싶은 마음, 불안한 마음, 그리고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알 수 없는 죄책감들. 착실한 모범생이 된 '나'는 할아버지 치릴로의 죽음을 겪으며 다시 한번 "사람으로 태어나서 겪지 않아도 좋을 일"을 겪은 엄마와 아빠를 향한 연민과 사랑을 키워 나간다.
소설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과거의 성장담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짧은 분량의 '오픈마이크' 챕터다.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중 진행되는 오픈마이크 시간에는 누구나 무대에 올라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 대본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 장면에서 독자들은 웃음도 많고 슬픔도 많았던, 사랑도 많고 미움도 많았던 '꽤 낙천적인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며 어른이 되었는지를 숱한 농담 속에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출판계에서는 지적인 풍자, 유려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문장, 거기에 빠지지 않는 감동까지, 우리가 기다려온 새로운 언어의 등장이라고 평한다. 정희진(문학박사,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의 저자)은 추천의 말을 통해 "이 작품은 첫 문장부터 직진한다. 근래 읽은 소설 중 가장 술술 읽히고 가장 재미있다. 작가 원소윤은 자전적 소설, 성장 소설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이토록 낙천적인 성장 소설이라니, 낙천적이지만 이토록 서늘한 고단함이라니. 거침이 없으되 성찰적인 신선한 자기 돌봄이라는 '장르'가 도착했다."고 평했다. 값 15,000원.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