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홍콩 완차이의 홍콩컨벤션센터에서는 미국 컴퓨터협회(ACM)가 주최하는 세계 최대 컴퓨터 그래픽·인터랙티브 분야 아시아·태평양 지역 학술대회 및 전시회인 ‘시그라프 아시아 2025’가 열리고 있었다. 한국 예술기업 부스를 둘러보던 홍콩인 관계자가 한 제품에 관심을 보였다. 직원으로부터 건네받은 가상현실(VR)기기를 쓰자 대한제국 시대 서울이 눈앞에 펼쳐졌다. 당시 유명한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의 지배인 미스 손탁의 안내에 따라 경복궁 안으로 들어가니 연회가 한창이다. 화려한 조명 아래 외국 사절단이 입장하고 고종 황제도 모습을 드러낸다. “예를 표하시오”라는 목소리에 일제히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인다. 이는 1902년 실제 열릴 뻔했던 ‘칭경예식(稱慶禮式)’ 행사다. 당시 고종의 즉위 40년을 맞아 대형 국제행사로 예정됐지만 여러 악재로 결국 열리지 못했다.
국내 예술기업이 현대적 상상력과 확장현실(XR)·VR 기술을 통해 이 행사를 재현해 낸 것이다. ‘기어이 스튜디오’가 선보인 다중 참여가 가능한 몰입형 VR 콘텐츠 ‘이머시브 궁’이 그것이다. 등장 인물은 인공지능(AI)에 바탕을 둔 아바타 자동생성기술로 만들었고 궁중연회도 실제 전통무용수의 춤을 모션캡처 기술로 본떴다. 총 6~10명이 VR 장비를 착용하고 전통 건축과 의복, 무용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이혜원 기어이 대표는 “K팝·드라마를 넘어서는 ‘K이머시브 콘텐츠’ 작품으로 K헤리티지와 스토리텔링, XR 기술을 결합해 세계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몰입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번 시그라프 아시아에서는 기어이를 포함, 국내 예술기업 4곳이 공동부스 및 발표 세션을 운영하면서 미디어아트, VR 등 혁신적 작품과 기술을 선보였다. 이들은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예경) 산하 아트코리아랩(Arts Korea Lab·AKL)이 입주·보육을 통해 지원한 예술기업이다. AKL 관계자는 “시그라프 아시아는 전 세계 전문가에게 한국의 예술·기술 융합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참여 기업들이 최신 기술 동향과 글로벌 시장의 반응을 직접 확인하고, 이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전략을 한층 고도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순수예술을 바탕으로 첨단기술과 접목해 예술산업 생태계 구축·확장을 목적으로 설립된 AKL이 최근 개관 2주년을 맞았다. 스스로는 ‘예술인 및 예술기업을 지원하는 예술·기술 융합 특화 플랫폼’이라고 부르는 데 보유 시설과 인력,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 실험부터 유통, 창업·성장, 글로벌 진출에 이르는 아트테크 활동 전 과정을 종합 지원한다. 대상은 입주기업(20곳)과 함께 비입주 멤버십 및 일반회원이다. 2023년 10월 개관했다.
개관 2년 만에 설립 취지인 창작과 사업화, 글로벌 진출 등 3개 분야에서 확실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사운드 전문의 오디오가이는 지난해 일본 도쿄 아리아케아레나에서 진행된 걸그룹 아이들의 VR 콘텐츠 공간음향 레코딩을 했고, 김치앤칩스리서치(미디어아트)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또 다른 달’을 전시했다. 식스도파민(VR 공연)은 하이네켄코리아와 협업 중이다. 델로는 최근 방영된 송중기·천우희 주연 드라마 ‘마이 유스’에 굿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AKL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소재한 AKL 공간을 올해 약 7만 명이 이용했으며 개관 이후 누적 이용자 수는 약 15만 명이다. 특히 시연장, 미디어월, 키네틱·이머시브 사운드 스튜디오 등의 주요 시설의 대관 이용 건수는 올해 8238건으로 작년 대비 45% 증가했다. 입주기업들은 올해 496명을 신규 고용했으며 밀레니얼웍스가 SM컬처파트너스로부터 5억 원을 투자 받아 누적 투자유치액은 약 40억 원이다.
핵심 프로그램인 ‘수퍼 테스트베드’와 ‘AKL 페스티벌’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수퍼 테스트베드’는 실험형 프로그램으로, 올해 기술교육, 창작실험, 프로토타입 제작을 지원하며 총 47건의 융합예술 작품을 발굴했다.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신진작가의 3D 아나모픽 미디어아트 작품이 명동 신세계백화점 초대형 미디어월(신세계스퀘어)에 전시되기도 했다. 또 ‘페스티벌’은 최신 트렌드를 중심으로 담론을 형성하고 성과를 공유하는 무대다. 지난 11월 행사에서는 AI를 주제로 한 컨퍼런스와 전시, 피칭 어워즈 등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총 9개국 118개 팀이 참여했으며, 관람객 수는 작년 대비 2.6배 증가한 4031명을 기록했다.

글로벌 진출도 활발하다. 프랑스 퐁피두센터 이르캄, 스페인 소나르 등 해외 융합예술 분야 기관 7곳과 파트너십을 체결했으며, 올해에는 프랑스 뉴이미지 페스티벌(4월), 스페인 소나르+D 페스티벌(6월) 등 총 5건의 글로벌 이벤트에 참여했다. 또한 예술인·예술기업의 해외 마켓 진출 17건을 지원했으며 기어이는 ‘시그라프 2025 밴쿠버’에서 이머시브 파빌리온 부문 최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장호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는 “내년에도 융합예술 분야의 변화 흐름에 적극 대응해 창작실험·유통 지원을 확대하고, 우리 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지속적인 협력과 성과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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