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았던 도움, 이젠 돌려줄래요”···자립준비청년 조규환씨, ‘산타’가 되다

2025-12-14

자립준비청년 조규환씨(26)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 장면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보육원 정문 앞에 서 있던 순간이다. 5살 아이는 형, 여동생과 함께 광주광역시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 15년간 보육원에서 지냈다.

“아버지의 손을 놓고, 보육원 선생님의 손을 잡은 채 울면서 보육원 안으로 들어가던 기억이 나네요.” 지난 8일 경향신문과 만난 규환씨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지었다.

규환씨는 이날 전국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위한 ‘산타클로스’가 됐다. 그를 비롯한 자립준비청년 25명은 우리금융그룹의 ‘우리금융미래재단’과 함께 6500명의 아이에게 전달할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하기 위해 모였다.

“보육원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려요. ‘선물이 있냐 없냐’가 정말 다르죠. 그 마음을 아니까 더 열심히 포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립준비청년은 만 18세 이후 보육원에서 나와 ‘홀로서기’ 하는 청년을 뜻한다. 규환씨는 굳이 자라온 ‘배경’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보육원에서 찾는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배경 ‘덕분에’ 받은 혜택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초등학생 때 ‘도움을 많이 받고 자랐으니 커서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쓴 일기가 있더라고요. 보육원에서 합창단도 하고 오케스트라도 했는데 배우려면 돈이 많이 드는 것들이잖아요.”

보육원에서의 삶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 보육원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할 때가 그랬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엄마, 아빠가 다툰 이야기를 할 때면 ‘부부 싸움은 어떤 느낌일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묘한 부러움도 느꼈다고 한다.

수도권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자취할 땐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혼자 잠을 자는 게 낯설어서인지 처음 몇 달간은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실제로 많은 자립준비청년이 홀로서기를 하며 겪는 어려움이다.

“처음에는 혼자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해주는 곳들이 많더라고요. 어려울 땐 당당하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자는 생각이 든 이후에는 자립 생활이 조금씩 편해졌어요.”

규환씨는 2023년부터 우리금융미래재단의 자립준비청년 멘토링 사업인 ‘우리사이’에 참여하고 있다. 자립준비청년이 관심 있는 분야의 사회인 멘토를 만나 조언을 듣고, 거꾸로 자신과 배경이 비슷한 아이들의 멘토로도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규환씨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중학생 3명의 멘토가 됐다.

“어렸을 때 보육원에 봉사하러 와주신 분들과 보내는 시간이 정말 행복했어요. 저희를 위해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게 느껴졌거든요. 늘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제가 가진 역량으로 봉사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단 관계자는 “자립준비청년 생애주기별 지원을 받은 청년들은 안정적으로 독립 기반을 마련하고 더 나아가 비슷한 환경에 놓인 또래 청년들과 보육원 동생들을 돕는 선행의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규환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경찰이 되면 이젠 사회인으로서 자립준비청년들을 돕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경찰이 돼서 뭐든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평생 목표는 ‘좋은 아빠’가 되는 거예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지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정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이날 규환씨는 어린 시절 자신이 기다리던 그 어른들처럼 한 보육원을 찾았다. 두 손엔 큼지막한 선물 상자가 들려 있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는 초등학생 때 일기에 적어둔 그 마음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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