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보이지 않는’ 도시도 안녕합니까

2025-11-11

하나의 도시에 ‘두 개의 세상’이 있다.

일상의 햇살이 닿는 ‘보이는 세상’이 있는가 하면, 햇살이 닿지 않는 발밑 깊은 곳 ‘보이지 않는 세상’도 있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는 지금도 20여 개의 지하철 노선과 1만 7000㎞에 달하는 상하수도관, 전력선과 통신선·공동구 등 각종 사회기반시설이 숨 가쁘게 작동하며 ‘보이는 일상’을 떠받치고 있다.

발밑 세상은 언제나 우리의 관심 밖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듯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건물의 높이, 도로의 폭 등 지상의 미관이 도시계획의 핵심 의제로 올라올 때 지하 안전은 도시계획의 논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보이는 곳부터 챙기는 것은 ‘예산’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서울 하수관로의 56%, 상수관로의 36%가 준공 30년을 넘겼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는 이유로 목표 교체 시기는 2040년, 저 멀리 미뤄졌다.

이런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올 3월 서울 한복판에서 지름 20m 규모의 대형 싱크홀(땅꺼짐)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성실히 살아가던 30대 가장이 목숨을 잃었다.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외면해온 사이, 위험은 이미 너무 가까이 와 있었기 때문이다.

평평하고 단단한 땅 아래, 균열이 진행되고 있었다. 최근 6년 서울에서만 122건의 땅꺼짐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의 주기는 짧아지고 빈도는 빨라지고 있었다. 우리가 그간 굳건하다고 믿어왔던 안전 대책은 ‘보이는 위험’만 관리하고 ‘보이지 않는 위험’은 외면해온 ‘반쪽짜리 안전’이었다. 보이지 않는 지하를 보이는 안전지대로 바꿔낼 근본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했다.

즉각 현장 상황을 살폈다.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했고 도시 행정 여건을 종합했다. 정기적 지하 안전 조사, 상시적 지하 관리, 선제적 지하 도시계획을 포괄하는 ‘지하 안전 강화’ 패키지 조례를 발의했다.

서울시 도시계획 조례를 개정해 도시계획의 범위를 ‘지상’에서 ‘지하’로 넓혔다. 지하 안전 전문가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하는 방안을 조례에 담음으로써 ‘보이는 공간’부터 ‘보이지 않는 공간’까지 안전한 설계가 이뤄지도록 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위험의 실체가 보일 때, 불안은 줄어든다. 서울시 지하 안전관리 조례 개정을 통해 지하탐사레이더(GPR) 탐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그 결과를 시민에게 공개하도록 했다. ‘보이지 않는 지하’를 투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시민의 불안을 줄이고 지하 안전의 신뢰를 높이는 조치였다.

조례는 만장일치로 우리 의회를 통과했다. “우리의 발밑이 안전해야 삶이 안전하다”는 일치된 믿음이 조례의 신속한 통과를 가능하게 했다.

세계도시들은 이미 일찍부터 지하로 눈을 돌린 바 있다. 도쿄는 ‘지하공간 종합관리계획’을 수립해 모든 지하시설물을 3차원 데이터로 통합 관리한다. 싱가포르는 디지털 트윈 기술로 지하공간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지하의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탐색 중이다. 방법은 달라도, 이유는 같았다. 보이지 않는 지하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지상의 영토는 포화 직전이고, 변화무쌍한 기후위기는 나날이 예측 불허다. 보이지 않는 ‘지하’가 지상의 대안 공간으로 떠오를 날이 머지않았다. 보이지 않는 위험 지대가 안심할 수 있는 안전지대로 바뀌는 날, 서울의 미래는 비로소 ‘안녕하다’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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