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한미 관세협상과 박카스의 '유쾌한 변신'

2025-08-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아왔던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 정부는 상호관세 15%로 합의해 일본·유럽과 비슷한 수준에서 경쟁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대표적인 수출 품목인 자동차 산업은 오히려 조건이 악화됐다. 그동안 일본과 유럽은 미국에 2.5%의 관세를 내고 있던 데 반해 우리나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가 없었다. 이번 협상으로 일본·유럽 자동차 업계의 대미 관세는 기존보다 12.5%포인트 올랐지만 국내 자동차 업계는 15%포인트의 새로운 부담을 지게 됐다. 아직 ‘디테일의 악마’가 변수로 남은 상황에서 이번 협상에 대해 전반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이르지만 우리 기업들이 과거와 다른 운동장에 서게 된 것은 확실하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소식에 언론이 분주할 때 제약 업계의 작은 뉴스 하나가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동아제약이 올 6월 편의점 GS25와 손잡고 출시한 ‘얼박사’가 한 달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 캔을 돌파했다는 것. 얼박사는 ‘몬스터’ ‘핫식스’ 같은 기존 에너지 음료 브랜드를 꺾고 매출 1위에 오르는 ‘사고’를 쳤다. 얼박사는 소비자들이 얼음 컵에 박카스와 사이다를 섞어 마시는 ‘편의점 꿀조합’에 착안해 아예 박카스와 사이다를 섞어 상품화한 음료다. 출시 초기만 해도 성공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시중에 워낙 많은 에너지 음료가 출시돼 있는 데다 올드한 브랜드인 박카스를 변형한 상품이 과연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하지만 얼박사는 이런 우려를 보기 좋게 뒤엎고 ‘홈런’을 날렸다.

박카스는 올해로 출시 62주년을 맞았다. 긴 세월 동안 인기 브랜드 명성을 이어온 배경은 끊임없는 혁신이다. 드링크 타입인 ‘박카스D(드링크)’를 거쳐 1990년대 초 ‘박카스F(포르테)’로 리뉴얼했고 2005년에는 타우린 성분을 두 배(2000mg)로 늘린 ‘박카스D(더블)’와 카페인에 민감한 소비자를 위한 디카페인 제품인 ‘박카스 디카페’를 선보였다. 경쟁사들이 에너지 음료를 잇달아 출시해 경쟁이 심화되자 젤리 형태의 ‘박카스맛 젤리’, 얼려 먹는 박카스 ‘얼박’ 등 새로운 형태의 제품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얼박사도 이 같은 혁신 DNA의 결과다.

혁신의 모티브는 끊임없는 고객층 확대였다. 동아제약은 1998년 ‘지킬 것은 지킨다’는 카피를 내세워 브랜드 타깃을 중장년층에서 젊은 세대로 넓히기 시작했다. 이후 N포 세대 청년, 출산과 육아에 찌든 엄마·아빠, 전통시장 청년 상인, 선생님 등을 응원하는 광고를 잇달아 제작해 힘든 국민을 응원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했다. 젊은 세대 공략을 위한 마케팅도 변신을 거듭했다. 외환위기로 어려웠던 1998년부터 20년 넘게 청년들과 함께 하는 ‘박카스 국토대장정’을 진행했다. MZ세대 공략을 위해 아이돌과 공동 마케팅을 펼쳤고 카카오프렌즈와 협업해 다양한 굿즈도 선보였다. 올여름 히트상품 얼박사 역시 젊은 소비자들이 스스로 다양한 상품을 조합해 새로운 맛을 즐기는 ‘모디슈머(Modisumer)’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일찌감치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며 판로도 확대했다. 동아제약은 1981년 처음 박카스 수출을 시작한 후 2012년부터 캄보디아를 비롯한 해외에 본격 진출했다. 그 결과 2015년 517억 원 수준이었던 박카스 수출액은 지난해 836억 원으로 늘었다. 박카스는 2015년 국내 제약 업계의 단일 품목들 중 처음으로 매출 2000억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국내외 매출이 3400억 원 이상을 기록해 여전히 동아제약의 ‘효자상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932년 설립된 동아제약은 올해 93번째 생일을 맞는 장수 기업이다. 이 회사의 박카스는 1963년 8월 8일 드링크형으로 출시된 후 62년간 혁신을 거듭해 성장했다. ‘현대 경영학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혁신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가 정의한 혁신은 “창의력이나 발상의 전환보다 실제로 움직이고 바꾸는 일”이다. ‘새로운 미국’ 앞에 시험대에 오른 우리 기업들이 박카스의 ‘유쾌한 변신’을 주목해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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